"조현병 환자, 미술 치료 통해 현실감과 정체성 찾을 수 있어"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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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병원]
약물과 심리사회적 재활 치료 병행해야
자발적 자기 표현 통해 정서 완화 효과

가나병원 김소영(가운데) 미술 치료사가 정신과 치료에서 미술 치료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가나병원 제공 가나병원 김소영(가운데) 미술 치료사가 정신과 치료에서 미술 치료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가나병원 제공

일본 작가 구사마 야요이는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화가이자 조각가, 설치 미술가다. 어린 시절부터 환각과 환청, 강박증과 신경증에 시달린 조현병 환자이기도 했다. 그가 평생 작업에서 반복한 '물방울 무늬'는 자신의 공포와 두려움을 통제하기 위한 치유의 방식이었다.

조현병은 전 세계 인구의 0.5~1%가 갖고 있는 질환이다. 조현병은 누가 봐도 이상하다고 여기는 생각과 말, 환각, 망상 등 양성 증상 외에도 감정 표현과 언어, 기쁨이나 흥미, 의욕 등의 감소와 사회적 위축 등 잘 드러나지 않는 음성 증상으로도 나타난다.

조현병의 음성 증상은 대부분 약물 치료만으로는 잘 회복되지 않는다. 가장 효과적인 치료는 약물 치료와 심리사회적 재활 치료를 동시에 하는 것이다. 미술 치료는 심리사회적 재활 치료의 하나로, 자기 표현력와 자기 존중감의 효과가 뛰어나다.

가나병원 김소영 미술 치료사(인우심리상담센터 원장)는 "미술 치료는 환자들이 미술이라는 안전한 매체를 통해 다양한 어려움과 문제점을 자유롭게 드러내고, 자발적인 자기 표현을 통해 자신의 삶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긍정적인 자아상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설명한다.

정신과 치료에서 미술이 치료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시작됐다. 특히 독일의 의사 프린츠호른은 1922년 정신병원 환자들의 그림 5000여 점을 수집해 발간한 책에서 미술 활동이 환자들의 심리 문제에 접근하는 데 유용하다고 보았다.

국내에서 미술 치료는 1960년 국립서울정신병원에서 시작됐고, 1990년대부터는 관련 학술 연구 발표도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많은 조현병 환자에게 미술 치료가 낯선 만큼 초기에는 명화 감상부터 시작해서 차츰 미술 표현 활동에 대한 호기심과 동기를 갖도록 이끈다.

김소영 미술 치료사는 가나병원 폐쇄병동에서 20년째 미술 치료를 하고 있다. 환자들은 작업 시간 동안 높은 몰입도를 보이면서 그림에 자신을 드러낸다. 형태, 색감, 구도 등도 독특한 경우가 많다. 말로 하지 못했던 억울함이나 소망을 오랫동안 반복해 그리기도 한다.

이러한 표현을 함께 들여다보고 알아주고 공감해주는 치료 과정에서 환자들은 비언어적인 의사 소통과 정서 완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고, 더 나아가 공동체 의식과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가 생기기도 한다.

김소영 미술 치료사는 "오랜 시간 미술 치료를 진행한 환자들은 불안정한 정서를 미술로 표현하고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어 욕구를 발견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자신을 스스로 이해하고 천천히 현실감과 정체성을 찾아간다"고 소개했다. 이어 "정신과의 미술 치료는 미술 활동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실존을 찾으려는 환자들의 의지를 만나고, 이를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함께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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