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글쓰기 교육법… 띄어쓰기·글씨 지적보다 자기 생각대로 쓰게 하는 게 먼저

김한수 기자 hang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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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토론-글쓰기는 연결된 과정
디지털 시대에도 중요성 변치 않아
짧아도 매일 쓰면 ‘생각 근육’ 성장
SNS, 온라인 일기장처럼 활용 가능

초등학생에게 글쓰기는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돼야 한다. 교육 전문가들은 자신의 생각을 글로 잘 나타내기 위해서는 독서와 함께 토론을 병행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부산 한 초등학교에서 진행된 독서 수업 모습. 부산시교육청 제공 초등학생에게 글쓰기는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돼야 한다. 교육 전문가들은 자신의 생각을 글로 잘 나타내기 위해서는 독서와 함께 토론을 병행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부산 한 초등학교에서 진행된 독서 수업 모습. 부산시교육청 제공

미국 하버드대에는 152년간 이어진 신입생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하버드 칼리지 글쓰기 프로그램’이다. 모든 신입생은 글쓰기 능력을 갖춘 대학원생으로부터 일대일 교육을 받으며 논리적인 글쓰기를 배운다. 1872년부터 운영 중인 이 프로그램은 논리적인 글쓰기를 위한 하버드대의 대표 강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글쓰기는 평생 해야 할 숙제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디지털 시대에도 글쓰기는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영역이다. 디지털 영상물을 제작할 때나 챗 GPT로부터 제대로 된 답을 이끌어 내려고 해도 제대로 된 글쓰기가 필요하다. 그만큼 글쓰기는 글을 읽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기초 실력을 쌓아 가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 아이 글쓰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부산 학교 현장에서 35년 동안 학생들에게 독서·토론 관련 수업을 진행했던 박길자 전 수석교사(현 한국교육나눔연구소 이사)는 “독서~토론~글쓰기는 하나의 연결된 과정”이라며 “독서를 통해 다양한 글감을 찾고, 토론으로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글쓰기로 생각을 글로 옮기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10분 글쓰기 ‘생각 근육’ 키우는 시간

하버드 칼리지 글쓰기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이끈 낸시 소머스 교수는 “하루 10분이라도 매일 글을 써야 ‘생각’을 한다”며 “읽고 쓰는 경험이 반복되면 ‘생각 근육’이 단단해진다”고 설명했다.

생각 근육을 키우는 데에는 짧은 시간이라도 매일 글쓰기를 해보는 것이 제일 좋다. 아이들이 가장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글쓰기 방법은 ‘일기 쓰기’다. 집이나 학교에서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짧은 글로 옮겨 보는 것은 글쓰기를 위한 좋은 출발일 수 있다.

일기가 글쓰기 시작에 좋다고 하지만 아이들에게 일기를 강압적으로 쓰도록 하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일기가 부담된다면 흔히 쓰는 ‘날씨는 맑았고, 놀이는 즐거웠고, 기분이 좋았던’ 내용만 반복할 수 있다. 그런 일기는 아이들의 글쓰기 실력 성장에 큰 도움이 될 수 없다.

대신 부모의 역할은 다양한 소재나 시각을 열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박 전 수석교사는 “아이들에게 다양하고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고, 그 속에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좋다”며 “새로운 시각이나 느낀 점을 부모와의 대화로 파악한 뒤 그것을 일기로 적어 보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글을 잘 써야 한다’는 고정 관념도 잠깐 접어두는 것이 좋다. 아이들에게 좋은 글이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솔직하게 쓴 글이다. 아이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한글 띄어쓰기나 맞춤법이 아이들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데 우선 고려 사항이 돼서는 안 된다. 아이들은 연필이나 볼펜을 쥐는 힘이 성인보다 약한 만큼 글씨체 역시 추후 고려 대상이다. 박 전 수석교사는 “초등학생에게 ‘글을 잘 써야 한다’는 부담을 주지 않아야 한다”며 “자신의 생각을 쓰고 싶은 대로 쓰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초등학교 시기에는 중요하다”고 말했다.

■책 읽고 토론하기, 함께하세요

좋은 글쓰기를 위해서는 책 읽기도 꼭 필요하다. 다양한 책에 담긴 내용과 지식을 간접 경험을 하고, 그것을 글로 정리해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책은 경험을 쌓을 물리적 시간을 대체할 수 있는 좋은 ‘글감 사전’인 셈이다. 책에서 읽은 글감을 더 오랫동안 기억하려면 자신만의 ‘독서 노트’를 만드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감명 깊었던 부분 △기억하고 싶은 문장 △이야깃거리 등 구체적인 항목을 정해 노트에 기록해 둔다면 글쓰기 소재는 잊히지 않고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다. 독서 감상문까지 쓴다면 ‘금상첨화’일 수밖에 없다.

독서 후 토론은 더욱 정교한 글쓰기를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다. 특정한 주제나 단어에 대한 토론을 나누고 그 내용을 정리해 글로 옮긴다면 토론 전보다 훨씬 논리적인 글쓰기를 기대할 수 있다. 토론을 하는 동안 자기 생각을 한 번 정리하게 되므로, 글쓰기는 더욱 정교해질 수 있다.

토론이라고 거창할 필요는 없다. 아이와 부모가 같은 책을 읽은 뒤 나누는 대화가 곧 토론이 된다. 대화 내용이 책 내용에서 맞고 틀림이 중요하지 않다. 아이가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글의 첫 문장을 더욱 자신감 있게 쓸 수 있다. 박 전 수석교사는 “토론의 목적은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표현하고, 그에 맞는 정당한 근거를 가지는 것에 있다”며 “토론을 하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은 물론 경청하는 태도를 익히는 것은 글쓰기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반응하고, 칭찬해 주세요

최근 초등학생들은 컴퓨터를 활용한 글쓰기가 익숙하다. 볼펜·연필을 활용한 글쓰기보다 컴퓨터 키보드나 스마트폰으로 글을 쓸 때 편안함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글쓰기 목적은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글로 표현하는 것에 있으므로 수단은 중요하지 않다. 컴퓨터로 자신의 생각을 잘 쓸 수만 있다면 충분하다.

20대부터 50·60대까지 넓은 연령대에서 온라인 글쓰기의 무대로 활용되고 있는 ‘블로그’는 아이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블로그는 차곡차곡 생각을 정리하는 ‘온라인 일기장’으로 활용할 만하다. 초등학생들에게 블로그보다 더욱 친숙한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SNS 채널도 하나의 통로가 될 수 있다.

채널이 어떤 곳이든 아이들이 글쓰기를 이어가는 데 중요한 힘은 ‘반응’과 ‘칭찬’이다. 아이가 쓴 글에 아빠와 엄마가 댓글로 생각을 단다면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일 수 있다. 박 전 수석교사는 “아이들은 블로그에 달린 댓글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되짚어 보고 더 나은 글을 쓰는 원동력을 얻을 수 있다”며 “부모의 응원은 꾸준한 글쓰기를 위한 원동력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박 전 교사는 “글쓰기가 처음인 아이들에게 글쓰기는 매우 힘든 과정일 수 있다”며 “짧은 문장이라도 꾸준히 쓰는 연습을 하고, 그 연습이 꾸준하게 이어질 수 있도록 부모가 칭찬과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면 아이들의 글쓰기 습관은 조금씩 만들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한수 기자 hang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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