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따라 드나들었던 등대, 이젠 아들이 지켜요” [바다 인(人)스타]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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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해양수산청 김대현 부산항관리센터장

조부·부친 이어 3대째 등대 관리
올 1월 둘째 아들도 공무원 합격
태풍 ‘매미’ 때 60m 파도와 사투
바다 최일선의 안전 지킴이 자부

지난 4일 부산 영도구 태종대 영도등대에서 만난 부산해양수산청 김대현(57) 해양교통시설 부산항관리센터장. 이상배 기자 sangbae@ 지난 4일 부산 영도구 태종대 영도등대에서 만난 부산해양수산청 김대현(57) 해양교통시설 부산항관리센터장. 이상배 기자 sangbae@

부산 영도구 태종대 남쪽 끝에 가면 기암절벽 위 우뚝 서 있는 영도등대를 만날 수 있다. 영도등대는 대한제국 세관공사부 등대국에서 1906년 12월에 세운 부산 최초의 등대다. 2004년 시설 일부가 교체되긴 했지만, 자그마치 118년 동안 부산 앞바다를 지켜왔다. 영도등대가 바다를 지킨 세월 못지않게, 4대에 걸쳐 등대를 지키는 공무원 가족이 있다. 부산해양수산청 김대현(57) 해양교통시설 부산항관리센터장이 그 주인공이다.

김 센터장은 1987년 5월 경남 통영시 소매물도 등대를 시작으로 38년째 등대 관리 업무를 해오고 있다. 조부인 김도수(1914~1981) 씨와 부친인 김창웅(1937~2001) 씨에 이어 3대째 해온 일이다. 그리고 지난 1월, 김 센터장의 둘째 아들인 성언(28) 씨가 해양수산부 기술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4대에 걸친 등대 가족이 탄생한 것이다. 지난 4일 영도등대에서 근무 중인 김 센터장을 만났다.

“저는 거제도에서 태어났습니다. 옛날에는 거제도에 조선소가 정말 많았거든요. 삼촌도 조선소를 다녔습니다. 고등학교를 나와 1~2년 정도 조선 분야에 몸담았는데 부친이 등대 일을 해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하더군요. 어릴 때 부친이 일하는 등대에 많이 다니기도 했고, 바다도 좋아해 등대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김 센터장은 1993년 부산으로 발령받았다. 김 센터장이 어린 시절 부친이 일하던 등대를 드나들었듯, 그의 두 아들도 자주 등대를 찾았다고.

“성언이는 대학에서 항공정비학을 전공한 뒤 해군 부사관으로 6년간 복무했습니다. 그곳에서 항공단 헬기를 관리했었죠. 지난해 8월 제대한 뒤 진로를 고민하기에 조심스럽게 제가 하는 일을 권했습니다. 그런데 흔쾌히 받아들였고 5개월 만에 치른 공무원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습니다. 대를 이어 같은 일을 하겠다고 나선 아들이 자랑스럽고 뿌듯합니다.”

김 센터장과 4대째 등대지기가 된 그의 둘째 아들 성언(28) 씨. 이상배 기자 sangbae@ 김 센터장과 4대째 등대지기가 된 그의 둘째 아들 성언(28) 씨. 이상배 기자 sangbae@

30년 넘게 등대를 지키며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2003년 제14호 태풍 ‘매미’가 닥쳐왔을 때를 꼽았다.

“태풍 매미가 올 때 저는 오륙도등대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2017년 무인화됐지만 그전에는 사람이 직접 근무했습니다. 오후 9시 30분쯤 태풍이 남해안에서 올라오는데, 바람이 너무 강해 파도 높이가 거의 60m에 달했습니다. 유리창이 깨지고 등대 안까지 바닷물이 들이닥쳤습니다. 설상가상 통신마저 끊겨 ‘이대로 정말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 센터장은 평소에도 등대에서 일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한다. 섬에 있는 등대에서 일할 때는 일주일 간격으로 교대 근무를 했는데, 날씨가 나쁘면 열흘 넘게 섬에서 나오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가족에게 미안한 감정이 그의 어깨에 쌓였다.

그럼에도 바다 최일선에서 선박 안전을 책임지는 이 일에 강한 자부심을 느낀다. 부산과 영도, 태종대를 찾는 관광객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도록 등대를 가꾸는 것도 그의 큰 기쁨이다.

“영도등대는 등명기(조명 장치)가 18초마다 3번 깜빡거립니다. 44km 밖에 있어도 이 빛을 보면 선원들은 ‘영도등대가 저기 있다’고 알 수 있죠. 이 깜빡이는 빛이 100년이 넘도록 부산항을 찾는 선박들의 길잡이가 되어준 겁니다. 요즘은 등대 자체가 하나의 문화 공간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등대를 찾아준 시민이 안전하게 바다를 즐기고 돌아갈 수 있도록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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