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도서관에 가자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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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규 플랫폼콘텐츠부 차장

매년 4월 12일 ‘도서관의 날’부터 일주일간인 도서관 주간에 공공도서관에서는 ‘대사면’이 이루어진다. 대출 기간을 넘기면 연체한 일수만큼 도서 대출이 정지되는데, 이 기간에 연체 도서를 반납하면 밀린 기간이 얼마든 즉시 대출 정지를 풀어주는 것이다. 책을 빌렸다 하면 대출 기간 2주가 너무 짧게 느껴지고 다음번엔 혹시 블랙리스트에 올라서 대출 기기 화면에 경고 신호가 뜨지 않을까 가슴 졸여 보았다면 반가울 행사다.

대출 정지는 도서관 이용자에게 가장 큰 벌칙이다. 거꾸로 말하면 이것 말고는 어떤 제재도 없는 관대한 곳이 도서관이다. 공공 소유의 책을 오래 들고 있으면 다른 사람이 읽을 기회를 빼앗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벌금을 물리지도 않고, 이름을 써 붙이지도 않으며, 도서관 출입을 금지하지도 않는다. 물론 블랙리스트에 올려 다음 대출에 제한을 두지도 않는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공공도서관이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서다. 도서관에서는 소비자가 아니라 시민으로서 대접을 받는다. 음료를 시키지 않아도 더위와 추위를 피할 수 있고, 카드키 없이도 화장실을 쓸 수 있다. 나이나 옷차림으로 박대를 받을까 봐 쭈뼛거리지 않아도 된다. 결정적으로 구독료를 내지 않아도 책을 무제한으로 볼 수 있고, 책을 보는 대가로 광고를 볼 필요도 없다.

공공의 공간은 갈수록 희귀한 것이 되어간다. 오프라인뿐 아니라 하루 종일 코를 박고 있는 스마트폰 속 온라인 공간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일지도 모르는 주의력을 갖가지 형태의 광고에 팔아넘기고, 구매력과 구매 의사로 우리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인정을 구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시대에 아직 동네마다 도서관이 굳건히 버티고 있다는 건 새삼 놀라운 일이다.

도서관에서 얻을 수 있는 건 환대의 경험 말고도 많다. 책 속에서 동서고금의 지혜를 만나는 건 모범 답안이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인권 기록 활동가 홍은전은 〈그냥, 사람〉의 서문에서 13년 동안 활동하던 노들장애인야학을 그만두고 도서관을 다니던 시절을 말한다. 처음에는 신문을 읽고 특강을 들으면서 우물 밖 넓은 세상을 신나게 배웠다고 했다. 그러다 유학파 저자가 보는 세상과 자신이 인권 운동 현장에서 본 세상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머물렀던 우물을 처음으로 들여다본다. 그리고 “세계관이란 나의 우물이 어디쯤에 있고 다른 이들의 우물과 어떻게 다르게 생겼는지를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가 보다” 생각한다. 그렇게 얻은 ‘세계관’을 갖고 그는 글을 쓰기 시작한다.

도서관에 가면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다. 그 경험을 경유해 자신의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고 그것을 세상에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다. 비행기를 타고 먼 나라로 가지 않아도, 이제는 교과서도 선생님도 없는 머리 굳은 어른이 되었더라도, 도서관에 가면 그 길로 가는 샛길이 있다. ‘고객님’을 환영하는 인사는 없지만 질문을 하면 기꺼이 도움을 줄 전문가들도 있다.

부산에는 교육청이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도서관 말고도 서울 말고 한 곳뿐인 국회부산도서관, 책과 보기 힘든 영화도 볼 수 있는 영화의전당 라이브러리, 오션뷰를 자랑하는 국립해양박물관 해양도서관도 있다. 산책 삼아, 마실 삼아 도서관에 가자.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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