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나는 뒷것이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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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들려온 ‘뒷것’이라는 낱말은 생소했다. 말뜻이 궁금했는데 TV 방송에서 답을 얻었다. 얼마 전 종영한 SBS 3부작 다큐멘터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반향이 컸다. 짤막한 유튜브로 설핏 봤다가 결국 본방까지 사수하게 됐다는 이들도 많다. 거기서 김민기는 말했다. “나는 뒷것이고, 너네는 앞것이다.” 알고 보니 뒷것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뒤에서 남 돕는 일을 묵묵히 수행한 그의 인생을 축약한 말. 뒷것의 삶은 숨은 행보였으므로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다큐를 보고서야 반세기 동안 ‘뒷것’으로서 ‘앞것’을 키워낸 사례가 차고도 넘쳤음을 알게 됐다.

1970~80년대, 그의 노래는 줄줄이 금지곡 족쇄에 묶였더랬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정치적 구호와 저항의 목소리를 분출한 적 없다. 그저 후미진 곳의 절박한 삶에 귀 기울였을 뿐이고 거기 깃든 장삼이사들의 애환을 낮게 읊조렸을 따름이다. 뒷것의 삶이란 본디 사람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안에 품고 있는 법이다. 이런 일화가 있다. 1970년대 보안사 취조실에 끌려가 죽도록 매를 맞다가 도리어 고문하는 이들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나 때문에 이 사람들이 죄를 짓고 있구나.” 그래서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는 이가 김민기다.

금지곡이 풀리고 ‘학전’ 대표로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열었을 때도 뒷것의 태도가 낳은 풍경은 여럿 펼쳐진다. 그는 학전을 배우와 가수들이 생활고에 시달리지 않고 마음껏 뛰노는 무대로 만들었다. 공연자들과 계약서를 작성해 최저 임금을 보장했고, 기여도에 따라 공연 수익도 배분했다. 정식 직원인 스태프들에게는 4대 보험까지 제공했으니 당시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는 아동극에도 깊은 열정을 쏟았다. 티켓값을 저렴하게 책정해 많은 어린이가 공연을 즐기도록 했고, 운영난 속에서도 어린이 공연을 20년 동안 고집했다. 아이들에 대한 관심 역시 세대의 뒷것으로서의 큰 사랑이었던 것.

뒷것의 삶이란 쉽게 말하면 ‘큰어머니’ 같은 역할이다. 김민기는 수많은 공연과 무대를 기획했지만 자신의 존재를 내세우지 않았다. 대신 ‘앞것’인 배우들을 세상에 알리고 그들에게 영광을 돌렸다. 낮은 골짜기로 흘러드는 물처럼 스며들어 바닥을 든든히 다진 사람. 어쩌면 윗세대 우리 어버이들의 삶이 바로 그런 게 아니었을까. 그런 헌신과 희생이 사회를 떠받치고 미래 세대를 지켜왔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된다. ‘뒷것 김민기’의 길은 투병을 넘어 계속 이어질 것이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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