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선으로] 사람은 서로 조심스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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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연구소 공동연구원

나와 다른 남을 대하며 사는 일은 기쁘고 신기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두렵고 힘든 일이다. 그것이 두렵고 힘들다는 것은 인류의 문화 곳곳에 묻어있는, ‘우리가 서로 같다’는 감각을 주는 의례와 장치들에서 알 수 있다. 가령 성인이 된 남녀들은 함께 술을 마시며 얼근한 취기 속에 서로 매한가지 인간임을 잠시 체감한다. 또는 어느 높은 건물에 들어가 여기 모두가 같은 신을 믿는 같은 신도임을 잠시 체감하는 때도 있다. 그처럼 너와 내가 잠시 같다는 감각은 그것이 도무지 가짜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위안과 안도를 준다.

사람이 태어나 거의 첫번째로 서로 다름을 구분짓는 기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성(性)이다. 물론 성에 얽힌 젠더의 관념은 따지고 보면 별다른 근거 없이 거기에 의미가 따라붙는다. 생식기가 다르고, 몸의 발육이 다르고, 목소리의 높낮이가 다르고, 습관적으로 쓰는 몸짓이 다른 것은 따지고 보면 각각의 인과관계가 별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것들은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으로 마치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재빠르게 정렬되고는 한다. 그런 정렬 방식에 근거가 적은 것만큼이나, 그것이 그렇게도 자연스러운 듯 작동된다는 사실을 직면하는 일은 중요하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고, 그 중 하나의 이유는 바로 사람들이 그만큼 나와 다른 사람들을 내게서 당장 친숙한 어떤 틀에 집어넣기를 선호한다는 데 있다.

세계의 모든 고등 종교의 경전에는 남녀의 구별에 대한 신화적 기록이 존재한다. 그것들 하나하나가 현재의 눈으로 보면 도무지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만큼 낡고 불의한 것들이 적지 않다. 그것이 과연 낡았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그것으로 마치 과거의 인간들과 지금의 내가 그런 불의함으로라도 잠시나마 서로 같아진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이 서로 같다는 느낌을 주는 인류의 모든 문화적 장치가 그렇듯 그것은 잠시일 뿐이다. 그 잠깐의 같음을 누린 후에 사람들은 여지없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 그 집에 누가 있든 없든 자기 몫의 외로움을 그러안은 채 잠을 청할 것이다.

사람이 어느 구럭에 기대 서로 같다는 생각을 반박하는 일은 사실 믿을 수 없이 간단하다. 내가 느끼는 남녀의 차이보다 내가 느끼는 남자와 남자 사이의 차이가 열에 아홉은 더 크다. 젠더뿐 아니라 모든 지역, 세대, 민족, 국민, MBTI도 다 마찬가지다. 이 지점에서 그 옛날 사람들이 종교 경전을 쓰면서 느꼈을 것들을 한번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사람이 서로 꼼짝없이 다르다는 것은 참으로 두렵고 힘든 일이다. 우리는 그 두렵고 힘듦을 조금 더 잘 다루고 살 수 있다. 그 점에서야말로 사람은 서로 꼼짝없이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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