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이기대 반딧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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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주리주 컬럼비아라는 소도시에서 장기 연수할 때였다. 차로 약 2시간 거리의 오자크 호수 인근에서 가족과 캠핑하던 중 어둠과 함께 반딧불이가 나타났다. 텐트 주변으로 불빛이 모여들면서 밤하늘이 보석 가루를 뿌린 것처럼 빛났다. 그 위로 은하수가 쏟아졌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장엄함을 잊기 힘들다.

반딧불이는 유충 상태에서 다슬기 등을 잡아먹으며 살다가, 6월 중순 반짝이며 날기 시작한다. 반딧불이가 빛을 내는 것은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다. 같이 놀자고 할 때는 바쁘게 깜빡거리고, 수컷이 짝을 찾을 땐 6번 깜빡거린다고 한다. 이 빛은 적을 위협하여 스스로를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과거에는 농촌 어디에서도 반딧불이를 볼 수 있었다. 옛날 기름조차 살 돈이 없는 가난한 선비가 있었다. 그는 반딧불이를 잡아서 그 빛으로 공부를 해 과거시험에 합격했다. 이를 통해 ‘형설지공’이란 고사성어까지 남겼다고 한다. 조금 과장된 것 같기는 하지만, 그만큼 반딧불이가 흔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1960년대 산업화 이후 맹독성 농약으로 자취를 감췄다가, 잔류성이 낮은 저독성 농약을 사용하면서 발견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반딧불이 서식지를 보존하려는 노력도 이뤄지고 있다. 전라북도 무주군과 경기도 성남시 맹산생태공원, 경상북도 영양군 수하계곡을 비롯해 반딧불이 자연번식에 성공한 서울 강동구 길동생태공원이 대표적이다. 환경지표 곤충인 반딧불이 보존 첩경은 환경오염 및 빛 공해로부터의 해방이다. 그래서 서식지 인근에서는 친환경농업을 권장하고, 가로등과 아파트 등 인공구조물 설치를 가능한 자제하고 있다.

최근 부산지역 지자체들이 수천만 원의 예산을 들여 반딧불이 축제를 개최하면서, 정작 주인공인 반딧불이는 본척만척하고 있다. 오히려 반딧불이 서식지라고 자랑하는 부산 이기대를 가리는 고층 아파트 건립마저 예정돼 있다. ‘눈 가리고 아웅’이 아닐 수 없다.

자기 이름을 단 축제로 인해 사라질 운명에 처한 ‘이기대 반딧불이’는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가슴이 답답하다. 죽어가는 것을 축하하기 위한 축제는 없기 때문이다. 반딧불이와 지역 주민이 바라는 것은 어둠이 내리면서 별과 반딧불이가 선사하는 자연의 빛이 아닐까.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사는 공간을 만드는 것은 오롯이 인간의 몫이다. 세상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높은 아파트와 시끄러운 축제가 아니라, 작은 반딧불이들이 주는 감동이지 않을까. 이병철 논설위원 pe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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