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힐링 시간 필요하다면…‘취미 미술’ 맛보기 어때? [혼잘알] ⑧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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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을 만나고 친해지는 게 싫어!” “전 혼자 있는 게 더 좋아요.” MBC 국민예능 ‘무한도전’에서 박명수가 남긴 말입니다. ‘혼생’이 더 즐겁다는 박명수의 어록은 수많은 ‘짤’을 탄생시킬 정도로 공감을 불렀습니다. 그래서 찾아봤습니다. 사람과 친해지지 않아도, 친구나 애인이 없어도 나 홀로 재밌게 놀러 다닐 수 있는 방법을. 둘도 없는 '찐친'이 전하는 후기라면 더 살갑겠지요? 그래서 '츤데레 스타일 명수체’로 전해드립니다! 그러니 막말한다고 나무라는 것은 자제해 주시길^^


물감 묻은 앞치마 입고 화가 코스프레 하기.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물감 묻은 앞치마 입고 화가 코스프레 하기.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가만 보자…다음 달이 벌써 6월이네??? 올해가 절반 가까이 지났다니 충격이다 충격.

다들 너무 앞만 보고 달려서 힘들지? 불황에 물가는 오르지, 직장에선 자꾸 이상한 일이나 시키지, 돈 나갈 일은 늘지…그런데 언제까지 스트레스만 받고 살 수는 없잖아. 차분하게 혼자 힐링할 수 있는 게 뭐 없나 찾다가 그림 그리기에 꽂혔어. 미술 학원 취미반 다니는 친구 말을 들어보니까 조용히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하더라고.

그렇다고 학원을 등록하기는 좀 망설여져서 일단 하루만 체험해보기로 했어. ‘취미 미술’도 원데이 클래스가 많거든. 가장 기본적인 게 아크릴 유화로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2시간짜리 과정이야.


부산시 수영구 민락동 모 공방. 답답한 회사에서 벗어나 화사하면서 아늑한 공간에 들어오니까 벌써 마음이 풀린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부산시 수영구 민락동 모 공방. 답답한 회사에서 벗어나 화사하면서 아늑한 공간에 들어오니까 벌써 마음이 풀린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지난 14일 오후 2시, 부산 수영구 민락동에 있는 한 공방에 도착했어. 중학생 때 미술학원 다닌 이후로 화실에 와본 건 처음인데, 아늑한 공간에 진열된 그림들을 보니까 벌써 힐링이 되는 것 같았어.

일단 공방에 들어오면 화가로 변해야 해. 물감이 얼룩덜룩 묻은 앞치마를 딱 입고 거울 앞에서 사진부터 찍으면 마음가짐이 달라져. 화가들이 주로 쓰는 베레모도 착용할 수 있는데, 소화하기 쉽지 않아서 나는 안 썼어. 아, 당연한 얘기지만 앞치마를 했더라도 옷에 물감이 묻을 수는 있으니까 너무 비싼 옷을 입고 오지는 말자고.


공방에 내걸려 있는 작품들. 전시회에 온 것 같은 분위기야.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공방에 내걸려 있는 작품들. 전시회에 온 것 같은 분위기야.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자 앞치마도 했겠다, 이제 자리에 앉아야지? 개인적으로 이 공방이 좋았던 점이 뭐냐면, 포털사이트로 예약할 때 커플 클래스랑 1인 클래스를 따로 선택할 수 있도록 했더라고. 지금까지 가봤던 원데이 클래스는 보통 커플 단위 참석자가 많아서 나 혼자 가면 괜히 민망하기도 했거든. 그런데 이 공방은 공간이 분리돼 있어서 커플은 커플끼리, 1인 신청자는 혼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되어 있었어. 혼자 있으니까 너무 편하고 좋더라~ 실제로 평일이나 주말 오전에는 혼자서 오는 사람도 꽤 있다고 하네.


그림 그릴 캔버스 준비 완료! 가로 21cm, 세로 27cm 정도 되는 크기고, 하늘과 바다를 분리해서 색을 칠하기 편하게 테이프를 미리 붙여놓은 상태야.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그림 그릴 캔버스 준비 완료! 가로 21cm, 세로 27cm 정도 되는 크기고, 하늘과 바다를 분리해서 색을 칠하기 편하게 테이프를 미리 붙여놓은 상태야.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그림은 자기가 원하는 샘플을 미리 가져와도 되고, 아니면 현장에서 직접 골라도 돼. 나도 여러 샘플을 보고 고민 끝에 노을 지는 바닷가를 그려보기로 했어.

근데 막상 그림을 골랐더니 앞이 막막하더라. 그나마 중학생 때 수채화를 그려보긴 했는데, 그 이후로는 붓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다행히 선생님이 붓 잡는 방법부터 하나하나 자세히 알려주셔서 그림 그리는 데는 지장이 없었어.


태블릿 PC에 있는 여러 샘플 중 그려보기로 한 그림. 분홍색과 보라색이 섞인 오묘한 하늘색이 예뻐 보였어. 문제는 내가 이걸 그릴 수 있을까 하는 거지….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태블릿 PC에 있는 여러 샘플 중 그려보기로 한 그림. 분홍색과 보라색이 섞인 오묘한 하늘색이 예뻐 보였어. 문제는 내가 이걸 그릴 수 있을까 하는 거지….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일단 먼저 보랏빛이 도는 하늘부터 칠했어. 선생님이 분홍색, 하얀색, 보라색 아크릴물감을 적절히 배합해서 색을 만들고 시범을 보여줬어. 솔이 납작한 2cm 평붓을 눕혀서 캔버스 왼쪽 끝부터 오른쪽 끝까지 한 번에 쓱~ 칠하면 돼.

이렇게 하면 당연히 중간에 색이 덜 칠해지는 부분이 생기는데, 그 부분만 따로 덧칠을 하면 색이나 질감이 부자연스러워지니까 인내심을 가지고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왕복해서 칠해주라고.

이렇게 계속 칠하면 새하얗던 캔버스가 점점 보랏빛으로 변하는데, 묘한 만족감과 설렘이 있었어. 모든 신경을 붓 끝에만 집중하니까 온갖 잡념이 사라지더라고. 아, 이게 힐링이구나 싶었어.


붓에 물감을 묻히고 왼쪽부터 끝까지 부드럽게 칠해주는 과정인데, 어딘가 어색한 게 누가 봐도 초보자 티가 나지?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붓에 물감을 묻히고 왼쪽부터 끝까지 부드럽게 칠해주는 과정인데, 어딘가 어색한 게 누가 봐도 초보자 티가 나지?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인내심을 가지고 푸른 바다까지 칠해주면….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인내심을 가지고 푸른 바다까지 칠해주면….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일단 밑바탕 채색은 완성! 깔끔하게 잘 칠했지? 문제는 이제부터야.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일단 밑바탕 채색은 완성! 깔끔하게 잘 칠했지? 문제는 이제부터야.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하늘을 칠하고 나면 바다 차례야. 역시 선생님이 물감을 섞어서 연한 파란색을 만들어주면, 그걸로 나만의 바다를 그려내는 거지. 그렇게 바다까지 그려서 캔버스를 꽉 채우니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았어.

배경을 다 칠했으니 이제 디테일을 그려줄 차례야. 이게 좀 어려운 부분이거든. 석양에 비쳐 반짝이는 윤슬을 생각보다 넓게 그려버리는 바람에 그림이 부자연스러워졌어. 그림을 그리다 보면 이렇게 된다니까? 길치들은 ‘아 이 길이 아닌 것 같은데’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발을 멈출 수가 없어서 헤맨다고 하잖아. 그림도 한 번 잘못 그리니까 ‘아 이렇게 칠하면 안 될 것 같은데’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계속 그리게 된다고.


원본 그림과 달리 점점 넓어지는 윤슬 부분. 이상해지는 걸 알면서도 붓질을 멈출 수가 없었어.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원본 그림과 달리 점점 넓어지는 윤슬 부분. 이상해지는 걸 알면서도 붓질을 멈출 수가 없었어.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결국 선생님 도움 찬스로 바다와 비슷한 색으로 덧칠해서 윤슬 범위를 줄여주는 중이야.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결국 선생님 도움 찬스로 바다와 비슷한 색으로 덧칠해서 윤슬 범위를 줄여주는 중이야.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다행히 문제 생길 때마다 선생님이 애프터서비스를 확실하게 해주셔. 선생님 지도에 따라서 윤슬 부분을 파란색으로 덧칠했더니 괜찮아졌어. 선생님은 시범만 살짝 보여주시니까, 나머지 수정 작업은 내가 직접 해야 돼.

윤슬을 표현하고 나면 해 주변이랑 파도를 그릴 차례야. 매번 다른 붓을 사용했는데, 붓마다 특징을 잘 설명해주니까 집중해서 들으면 그리는 데 전혀 문제 없어.

파도 거품은 아주 미세한 붓으로 흰색 점들을 그려서 표현했는데, 자연스럽게 그리려고 여기저기 점을 마구 찍다 보면 모든 잡생각이 사라지는 경험을 할 수 있어.


점점 완성돼가는 게 보이지? 흰색 점들로 파도 거품을 표현하는 중인데, 자연스럽게 그리려 하니까 이것도 마냥 쉽지는 않았어.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점점 완성돼가는 게 보이지? 흰색 점들로 파도 거품을 표현하는 중인데, 자연스럽게 그리려 하니까 이것도 마냥 쉽지는 않았어.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우여곡절 끝에 파도까지 완성하면 구름으로 피날레를 장식할 차례야. 이번엔 뭉툭한 붓으로 하늘보다는 조금 진한 보라색 구름을 만들었어. 자연스럽게 잘 그렸다는 선생님 칭찬에 어깨가 절로 으쓱거려지네. 2시간 조금 넘는 과정이었는데 힐링 제대로 했어.

완성작은 고이 포장해서 집에 가져가면 돼. 적당한 곳에 두니까 인테리어 효과도 있고, 내가 직접 그린 그림이라는 뿌듯함도 있어서 일석이조야.


거의 마지막 작업인 구름 그리기. 솔이 뭉툭하고 단단한 붓으로 톡톡톡 두드려주면 자연스럽게 구름이 그려져.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거의 마지막 작업인 구름 그리기. 솔이 뭉툭하고 단단한 붓으로 톡톡톡 두드려주면 자연스럽게 구름이 그려져.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혼자 그림 그리러 와도 좋은 점. 선생님이 사진을 잘 찍어주심. 민망함을 무릅쓰고 따로 요청하지 않아도 열정적으로 잘 찍어주시더라고.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혼자 그림 그리러 와도 좋은 점. 선생님이 사진을 잘 찍어주심. 민망함을 무릅쓰고 따로 요청하지 않아도 열정적으로 잘 찍어주시더라고.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2시간 정도 걸려서 완성한 그림. 왼쪽 원본에 비해 디테일은 좀 떨어지지만, 생초보가 이 정도면 잘 그린거지?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2시간 정도 걸려서 완성한 그림. 왼쪽 원본에 비해 디테일은 좀 떨어지지만, 생초보가 이 정도면 잘 그린거지?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포장해서 집으로 모셔온 그림. 다시 보니 앞의 파도 거품 부분이 좀 아쉽긴 하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포장해서 집으로 모셔온 그림. 다시 보니 앞의 파도 거품 부분이 좀 아쉽긴 하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참, 나랑 같은 시간에 옆 방에서 클래스를 들은 커플은 부부였어. 유정식(32), 이이진(30) 부부는 첫 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아서 부산에 놀러 왔는데, 수업 후기를 물었더니 재미있고 집중이 잘 돼서 만족했다고 하네. 기념일에 추억할 만한 무언가를 남기고 싶었다는데, 멋진 그림이 생겼으니 집에 걸어놓을 예정이래.


왼쪽이 유정식 씨, 오른쪽이 이이진 씨가 그린 그림. 두 사람 모두 그림을 그려본 경험이 많지 않다고 했는데 결과물은 예쁘게 잘 나왔어.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왼쪽이 유정식 씨, 오른쪽이 이이진 씨가 그린 그림. 두 사람 모두 그림을 그려본 경험이 많지 않다고 했는데 결과물은 예쁘게 잘 나왔어.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취미로 그림을 시작했다가 ‘작가’로 데뷔한 사람도 있었어. 최인숙(53) 씨는 딸과 함께 원데이 클래스를 몇 번 체험한 게 계기가 됐어. 여기 공방엔 정기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취미반’과 ‘전시반’이 있는데, 최 씨는 작년부터는 전시반 수업을 듣고 있고 이미 작품을 전시해본 경력이 있는 엄연한 작가야. 최 작가는 “우리가 어디서 작품을 전시해볼 수 있겠냐”면서 “전시를 하고 나면 가족의 대우가 달라진다. 호칭이 ‘작가님’으로 변한다”고 웃었어.

그림은 중장년에게도 좋은 취미야. 최 작가에게 그림 그리기의 매력을 물었더니 이렇게 설명하셨어. “아이들이 다 독립하고 나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자녀의 빈 자리에 공허함을 느끼는 ‘빈둥지 증후군’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되고,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요.”


대형 캔버스에 감천 문화마을 전경을 그리고 있는 최인숙 작가. 올해 전시반은 서면 모처에서 전시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하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대형 캔버스에 감천 문화마을 전경을 그리고 있는 최인숙 작가. 올해 전시반은 서면 모처에서 전시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하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선생님한테 전시반과 취미반에 대해 여쭤봤는데, 대부분 혼자 오고 연령대도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하다고 하네. 69세에 취미로 시작해 3년째 전시를 하고 있는 분도 있대. 선생님 말씀을 전하자면, “그림에 열정만 있으면 누구나 전시를 할 수 있어요. 열심히 운동해서 보디프로필 사진을 남기는 것과 비슷하죠. 큰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게 메리트예요”라 하시더라고. 힐링도 하고 성취감도 얻고 싶은 사람은 멍 때리지 말고, 당장 그림 그리러 가보자고~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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