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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占) 권하는 사회] 재미로 占 본다? 시장규모 4조, 영화산업보다 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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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시대에 미래를 점치는 사주, 점 등이 아직도 성행하고 있다. 사진은 영화 ‘박수건달’의 한 장면. 부산일보DB

학 졸업을 앞두고 있는 이현준(가명·27) 씨는 학교 앞 사주 카페를 자주 이용한다. 인테리어도 괜찮고, 옆 자리에서 사주를 보는 또래 친구들을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나만 힘든 게 아니란 걸 확인하며 위로를 받을 때가 많아요.” 새해를 며칠 앞둔 이 씨의 관심사는 온통 취업에 쏠려 있다. 이 씨의 신년 운세는 어떨까? 삼재가 시작될까, 대운이 펼쳐질까?

첨단과학의 시대
휴대폰 ‘사주·운세’ 앱 인기
번화가 사주카페거리 젊은이 북적
불황 속 연말연시 ‘운명산업’ 호황

불확실한 미래 불안감과 초조함
정신 치료 터부시 분위기도 한몫
의지할 곳 필요해도 맹신은 금물

연말연시 ‘운명산업’ 호황

사물 인터넷이 일상으로 들어온 첨단과학 시대, 정보통신기술 시대지만 ‘점(占)’은 우리 주변에서 여전히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신문마다 오늘의 운세는 기본이고, 대형 은행들도 고객들에게 인터넷을 통해 사주·토정비결을 무료로 서비스하고 있다.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앱)의 ‘사주’, ‘운세’ 콘텐츠는 게임 다음으로 가장 인기 있는 아이템이다. 젊은이들 구미에 맞춰 재미를 강조한 각종 형태의 점이 선보이고, 입시·취업·결혼 등 전문영역으로 세분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27일 오후, 부산에서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 서면 쥬디스태화 골목의 사주카페 거리. 10여 개의 카페들마다 손님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추운 날씨에도 차례를 기다리며 바깥 의자에 앉아 대기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옥황선녀’ ‘신의 한 수’ 등 카페 이름은 전통과 젊은이 취향에 맞춘 퓨전 식이다.

“친구와 함께 타로 점을 봤다”는 김미숙(가명·23) 씨는 “졸업까지 한 학기를 남겨두고 취업과 남자 친구 문제 때문에 찾았다”며 원하는 답변은 못 들었지만 나름 재미는 있었다고 말했다. 사주카페 거리에는 중학생 3000원, 고등학생 5000원 등의 가격표가 붙어있어 이곳을 주로 찾는 사람들의 연령대를 짐작케 했다.

취업 포털인 인크루트의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절반 이상인 53.5%가 새해를 맞아 신년운세를 봤거나 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결혼정보업체 듀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미혼 여성의 82%, 미혼 남성의 57%가 한 번 이상 사주·타로 전문가를 찾아 자신의 연애·결혼 운을 물었다.

점은 ‘운명 산업’으로 불릴 정도로 급속하게 세를 넓혀가고 있다.

올해 초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37억 달러에 달하는 한국의 점술 시장”이라는 특집 기사를 실어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무려 4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시장 규모다. 지난해 한국의 전체 영화산업이 2조 3271억 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데 비하면 이를 훨씬 뛰어넘는 거대 비즈니스인 셈이다.

사주? 점? 어떻게 다를까

예부터 한국 사람들은 인생의 굽이굽이마다 점을 치고, 사주팔자를 따져왔다. 결혼 전에는 궁합을 보고, 이사할 때는 손(떠도는 귀신) 없는 날을 골라 택일을 한다. 좋은 사주를 골라 시간을 정해 아이를 출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역학’이라는 이름으로 나와있는 수많은 명리·사주풀이 책들과 인터넷 사이트, 앱 등은 한국인의 기층의식 속에 사주가 얼마나 뿌리 깊이 박혀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길흉화복을 점치는 타로 카드. 부산일보DB
한마디로 역학이라고 하지만 그 종류는 여러 가지로 나뉜다. 크게는 동양철학의 하나로 학문으로 접근하는 사주명리학과 이른바 ‘신 내림’을 받은 점집이 있다. 그 외에 자미두수, 관상, 육효 등 다양한 종류가 있으며 최근에는 타로 카드가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다.

사주(四柱)란 사람의 생년 생월 생일 생시를 집의 네 기둥과 같은 것으로 보아 붙여진 이름이다. 각각 간지 두 글자씩 모두 여덟 자(八子)로 나타내므로 사주팔자라 불리기도 한다.

청화학술원의 박청화 원장은 “사주명리학이 학문이고 분석이라면, 점집은 신과의 영적 교감에 치중하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점집 앞에 세워져 있는 대나무 깃발은 다른 존재와의 영적 교감을 중계하기 위한 안테나의 개념이고, 점치는 사람은 메신저인 셈이다. 반면 사주를 보는 사람은 동양철학을 공부하는 학자다. 다년간의 공부와 경험이 뒷받침돼야 한다. 토천 행복연구원의 장종원 원장은 “같은 사주를 놓고 다른 해석이 나오는 경우는 공부가 부족하거나 환경적인 요인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점 보는 사람들의 심리

점은 왜 볼까?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스스로 의지할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 누구를 막론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은 있게 마련이다. 장종원 원장은 “사회가 혼란하고, 미래가 불확실할수록 불안감은 커지고, 그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의 위안 수단으로 점이 유행하게 된다”고 말했다. 지금 젊은이들은 학업, 취업, 결혼 등 미래에 대해 출구 없는 미로 속을 헤매고 있다. 우리 사회가 ‘점보는 사회’라는 소리를 들을 만한 이유는 충분히 차고 넘치는 셈이다.

기업인이나 정치인들 역시 많은 일들을 점으로 알아보고 점에 의존한다. 그만큼 변수가 많고 불확실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과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은 점을 신봉하는 대표적인 기업인으로 유명하다. 이 전 회장은 신입사원 면접 때 역술인을 동반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정 전 회장이 세무공무원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것 역시 역술인의 권유를 받아들인 것이었다.

정계 역시 점 없는 정치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점보는 것이 만연해 있다. 특히 선거철이 되면 당선 여부를 놓고 정치인과 그 측근들이 역술관과 점집 문턱이 닳도록 넘나든다. 부산, 대구 등 유명 역술인들은 역대 대통령들이 모두 자기를 찾아 점을 보았다는 얘기를 자랑삼아 얘기하기도 한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에서 사주·타로가 보편적인 이유 중 하나로 정신건강 치료가 사회 전반적으로 터부시된다는 점을 짚었다. 정신과 전문의와의 상담이 보편적인 영국이나 미국과 달리 정신과를 찾는다는 사실 자체가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철학관과 점집에 가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치유를 받는 효과가 있다는 게 <이코노미스트>의 분석이다.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과거와 달리 풍족한 삶을 누리게 됐지만 정신적인 행복을 찾지 못한 젊은이들이 사주·타로 시장의 주 소비자가 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들은 해답이 아니라 재미를 위해서 사주를 본다.

점을 대하는 바람직한 자세

세상 모든 것의 근원은 인간의 마음이다. 아무리 좋은 사주를 타고 났다고 하더라도 마음을 나쁘게 쓰면 길운이 찾아올 리가 없다. 반대로 다가올 운명이 나쁘다고 해도 마음을 바로 쓰고 조심하면 잘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일에 부닥쳤을 때, 무엇인가를 결정해야 할 때 도움을 얻기 위해 역술인을 찾는다면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우선 맹신은 금물이다. 절박한 상태에서 아무 말이나 무턱대고 믿었다가 큰 낭패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좋은 역술인이란 과거나 미래를 정확히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삶에 좋은 변화를 가져오도록 도움을 주는 사람이다.

장종원 원장은 “명리학에는 강한 것은 억누르고 약한 것은 북돋아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억부이론이 있다”며 “좋은 말을 들으면 나태해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안좋은 얘기를 들으면 극복하기 위해 더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세상에는 꾸준한 노력을 당할 사람이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박청화 원장은 “점을 본다는 것은 거울을 쳐다보는 것과 같은 이유”라며 “다른 시선으로 자신을 살펴보고 스스로 가다듬는 마음을 갖는다면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보다 좀 더 발전하는 것이 자명한 이치”라고 말했다.

정상섭 선임기자 ver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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