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로 사람 홀리는 '장산범'] 익숙한 목소리 들려온다 공포 밀려온다
입력 : 2017-08-17 19:16:30 수정 : 2017-08-20 11:15:59
부산 장산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장산범'은 목소리를 흉내 내 사람을 홀린다는 괴담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 스릴러물이다. NEW 제공"쉿! 여기선 어떤 소리도 내면 안 돼요."
스산한 기운이 가득한 동굴 안. 조그만 여자아이가 젊은 여자에게 나지막하게 귀엣말을 건넨다.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고 초조해 보이는 둘. 그 순간, 여자는 발을 헛디뎌 '악!'하고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이어 소름 돋는 괴성이 엄습하자 동굴은 이내 공포의 도가니로 탈바꿈한다. 허정 감독이 미스터리 스릴러로 요리해낸 영화 '장산범'은 이렇듯 시작부터 간담을 서늘케 하는 장면들로 넘쳐난다. 영화는 부산 해운대구에 위치한 장산을 배경으로 겉모습은 흰 호랑이를 닮았고 친한 이의 목소리를 흉내한 사람들을 유혹한다고 알려진 '장산범 괴담'을 스크린에 펼쳐놨다. 줄거리는 이렇다. 아이를 잃어버린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도시를 떠나 부산 장산으로 이사 온 희연(염정아). 숲속에 혼자 숨어있다 자신을 찾아온 여자아이(신린아)를 딱하게 여겨 집으로 들인다. 이후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는 물론 남편(박혁권)까지 실종되는데 과연 이들 가족에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부산 해운대 '장산범 괴담' 모티브
소름 끼치는 소리·인물 감정선
관객 숨막히는 공포로 몰아넣어
염정아, 심리 불안 섬세하게 연기
숙소·촬영장 귀신 목격담 '화제'
■해운대 '장산범 괴담'이 모티브
영화는 지난 2013년 '숨바꼭질'로 관객들의 밤잠을 설치게 했던 허 감독의 신작이다. 호랑이로 추정되는 장산범은 그 실체가 불명확한 괴수. 극 중에도 직접 모습을 드러내진 않는다. 때문에 감독은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름 끼치는 '소리'로 관객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 자극적인 장면 대신 인물의 감정선을 통해 서서히 무서움을 조여가는 것. 산 사람은 물론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내고 가공할 만 한 호랑이 소리까지 내는 괴생명체의 존재는 가히 두려움을 유발할 만하다.

후반부로 갈수록 시각적인 요소가 더해져 본격적인 공포가 태풍처럼 휘몰아친다. 장산범에 영혼을 빼앗겨 신들린 무당 연기를 보여준 이준혁은 그 정점. 괴수의 모습을 한 그가 끈적한 액체를 흩뿌리며 다가올 땐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한다.
■거울 등 다양한 공포장치 탁월
염정아의 연기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극의 중심을 이끌어가는 희연을 연기한 그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존재로부터 다가오는 심리적 불안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덕분에 그의 모습이 스크린에 비칠 때마다 객석은 비명으로 요동친다. 이미 2003년 영화 '장화홍련'에서 공포에 사로잡힌 열연을 통해 '스릴러 퀸'이란 별명을 얻은 염정아이지만 이번 작품에 대해 "진짜 무서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왜 그랬을까. 그는 극 중 다양한 공포의 장치 중 '거울'을 으뜸으로 꼽았다. 차가운 유리 위로 비치는 의문스러운 물체의 모습은 너무나 흉측해 보인다. 여기에 내용을 알 수 없는 끈적한 액체까지 흘러내린다. 염정아는 "그 모습이 너무 무섭고 징그러워 한동안 거울을 제대로 못 봤다"며 "특히 가족들이 모두 잠들었을 땐 메이크업을 지우기도 무서워 그냥 자곤 했다"며 '거울 공포증'을 우회적으로 털어놓기도 했다.
■등골 오싹한 경험 현장서 속출염정아는 촬영 중 실제 귀신을 목격했다는 흥미로운 에피소드도 곁들인다. 늦은 시간에 촬영을 마친 여자 스태프 두 명이 쉬기 위해 근처 모텔에 방을 잡았다. 한눈에 딱 들어오는 화장대 하나. 그런데 이게 웬일. 그 밑에 한 여자아이가 쪼그려 앉아 '하나.하나'하며 뭔가를 세고 있었다. 너무 놀라 방을 뛰쳐나온 후 주인과 함께 다시 가보니 아이는 사라지고 없었다고 한다.

박혁권도 등골 오싹한 경험을 전했다. 그는 "집 세트장 촬영이 끝난 후 뒤돌아봤는데 형용할 수 없는 스산하고 음산한 기운을 느꼈고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며 끔찍했던 '귀신담'을 털어놨다.
여기에 미스터리한 소녀 역을 연기한 아역배우 신린아의 활약상도 빼놓을 수 없다. 순진무구한 외모 탓에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지만 막판 허를 찌르는 의외의 행동에 관객들을 더욱 오싹하게 만든다. 아무튼 부산의 소름 돋는 괴담을 스크린에 버무려낸 '장산범'. 무더위의 끝자락에서 과연 관객들의 마음도 홀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남유정 기자 bstoda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