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일본은 한국의 분국이었다 <12> 메이지 분서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한국 고기록 수탈 `분서갱유`

일본이 탈취해 간 경상도 호적대장.

일본은 메이지천황주의 유신으로 아시아 침략의 마수를 뻗쳐 1910년 우리나라를 무력으로 강탈했다.

초대 조선총독 이래 자원수탈은 물론 만세일계의 일본왕(천황)이 한국민족의 조상이며 고대 한국을 일본이 정복하여 김해지역에 임나일본부를 설치,속국으로 지배했다며 침략합리화의 황당무계한 위사꾸미기를 지상과업으로 삼았다.이른바 "메이지 분서 공작"이다.진시황의 분서갱유처럼 역사를 태워 없애는 일이었다.

우선 총독부 직속기관으로 조선사편찬위원회(후일 "편수회"로 개칭)를 발족시켰다.침략정책 수립자인 정무총감을 위원장에 임명하고 일본관료 15명과 어용사학자 두목급인 도쿄대 교수 구로이타 가쓰미 이마니시 류,교토대 미우라 히로유키 등을 위원으로 배속했다.우리측은 친일파 이완용 박영효 권중현을 고문으로,위원에 이진호 어윤주 최남선 정만조 이병도 이능화(총독부 사무관) 등 20여명이었다.

중무장한 헌병 경찰이 둘러싼 총독부 일실에서 단국조선사를 개찬하는 작업부터 서둘렀다.삼국유사의 석유환국(석유환국:옛날 환국이 있었다)이라는 구절을 "고대 한국에는 환국이란 국체가 없었고 전설적 인물 환인이 있었을 뿐"이라며 개찬했다."환국"기록을 그대로 두면 한국이 일본보다 국체성립이 오래된 것이 되며 이를 변조하지 않고는 일본 우월성을 위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때맞추어 이마니시 류 등이 극비리에 삼국유사 목판영인본 중 환국의 국자를 인자로 조작해 "환인"으로 변조한 "조선사"를 서울의 일본출판 공작팀인 고전간행회 및 교토제국대학에서 출판,한일 양국 기관에 배포했다.

조선사편찬위원회는 한국사 왜곡문제로 한일 양국 위원들 간에 연일 논란을 벌였다.일본측은 왜곡해 놓은 "조선사"를 들고나와 "이 책자에도 환인으로 기록되어 있다"면서 사기 협잡 수법까지 썼다.

당시의 기록에는 최남선 정만조가 "국자를 인자로 개찬한 책이 무슨 자료가치가 있느냐"는 요지로 항변했으나 일본측은 막무가내.최남선은 "조선민족은 단군이 환국을 개국하였고 그의 조상이 환웅 환인인 것을 철저히 인식하고 있는 바,이를 개찬하는 것은 너무도 부당하다"며 반발,난감해지자 총독이 직접 나타나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일본측은 친일파 이능화를 매수 협박,왜곡앞잡이로 이용하여 관철시켰다.그래서 이완용은 국권을 팔아먹었고 이능화는 민족역사를 말살한 매국노의 쌍벽이라고도 한다.

한편 "메이지 분서" 공작은 총칼로 우리 고기록을 수탈,불살라 없애버리는 작전이었다.총독부의 "조선사편수사업개요"사료수집기록을 보면 우리나라 방방곡곡에서 사진 4천511건,역사 관련문서,그림,편액 등 453종을 수거했다.심지어 고대에 우리 민족이 일본에 진출할 때의 징검다리였던 쓰시마에 있는 자료까지 마구 뒤져 고문서 6만1천469건,고기록 3천576책,고지도 37장,고화류 18권 및 53장을 압수했다.압수,탈취과정에 불응하면 반일분자라는 중죄로 몰아 투옥 고문을 자행했던 것을 감안하면 이 통계는 축소된 기록이다.

더욱이 일본 천황시조와 관련깊은 가야사말살에도 혈안이 되어 가야유적을 닥치는대로 파헤쳐 가져 가 궁내청과 덴리대학 창고에 산더미로 숨겨놓았다.조선총독부 경무령을 발동하여 "김해 김씨족보 발행을 금지"시켰는가 하면 경상도 각 고을의 모든 호적대장 121책을 탈취해 현재 가쿠슈인대학 동양문화연구소에 밀봉하고 있다.

일본은 이같은 "왜곡조선사"에 의거하여 "고대 한국은 일본의 예속국이었다"며 한국 경멸교육에 활용하고 있다. 도쿄=최성규지사장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