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산책] 바이브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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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현대인의 내면 다룬 여인의 일탈

한 여성의 일탈을 다룬 '바이브레이터'는 특별할 게 없는 영화다. 그러나 편의점에서 물건을 고르는 하야카와 레이(데라지마 시노부)를 묘사하는 장면에서부터 묘한 주의를 끈다.

프리랜서 르포 작가 레이는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목소리에 싸여 있다. 누군가 했던 말,잡지의 문장들,내면의 속삭임들이 그녀를 압박한다.

독일산 화이트 와인을 고르던 그녀에게 한 남자가 다가온다. 그녀의 머릿속 목소리가 반응한다. "먹고 싶다,저거 먹고 싶다."

레이는 트럭를 운전하는 오카베(오오모리 나오)를 따라간다. 그와 정사를 나눈 후 여행길에 나선다.

이때부터 영화는 더욱 단순해진다. 트럭에서 자고,먹고,섹스하는 것이 전부다. 그 사이에 두 사람이 나누는 감춰진 이야기들이 있다.

평범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가족,상처,고통 등. 이들의 여행은 일상의 반복을 확인하는 것이자 일상의 치유이며 동시에 일탈이다. 어느덧 레이는 환청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것은 곧 여행이 끝났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관객들 역시 레이의 여행과 함께 자신이 안고 있는 상처의 일부분이 어루만져지는 것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바이브레이터'가 전하는 진동은 위로와 안식을 주는 공감의 애무다.

그들이 상처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구체적인 정황을 알기는 어렵다. 현대인들이 앓는 마음의 질병처럼 막연한 느낌을 주기 마련이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좀 더 서로를 알게 되고 친밀함을 느끼게 될 때,서로를 교감하게 될 때 제자리로 돌아갈 힘을 얻는다. 영화는 수많은 타인의 목소리를 전한다.

대화,음악의 보컬,트럭의 진동,라디오의 소리,무선 교신 등 세상을 감싸고 있는 타인들의 목소리(진동)를 전한다. 그것은 누군가를 애타게 찾는 신호처럼 들린다.

히로키 류이치 감독은 1982년에 핑크무비 '성학대! 그 여자를 폭로한다'로 데뷔했다. 일본에서는 핑크 무비 출신의 감독이 많다.

구로사와 기요시처럼 핑크 무비로 입문한 후 지금은 대표적인 감독으로 평가받는 경우가 있다.

류이치 역시 삶과 사랑에 솔직한 언어들을 구사하면서 일본인들의 황량한 내면 풍경을 감각적으로 다뤄내면서 새로운 주자로 각광받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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