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푸는 신비의 세계] < 7 > 땀 흘리는 밀양 표충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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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도차이 인한 표면 응결현상'

국가 중대사가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리는 것으로 유명한 경남 밀양시 무안면의 표충비.

"따르릉! 따르릉!"

경남 밀양 무안면의 한 사무실에 전화벨이 급하게 울린다.

"무안면 표충비 담당자 '아무개'입니다."

"(전화 너머)여기 청와대야! '땀' 흘렸어!"

표충비 담당자가 아연 긴장하며 부동자세를 한다. "아닙니다. 흘리지 않았습니다."

"(전화 너머)이상한데! (땀이)흘러야 되는데…."



이상은 시절이 수상했던 군사정권 때 무안면 표충비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 전해져 오던 에피소드 중 하나를 재미있게 재구성한 내용이다. 처음에는 표충비가 땀을 흘리는 것을 흉흉한 민심이나 국운을 반증하는 것으로 여겼지만, 점차로 군사정권의 하수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표충비의 땀 탓으로 돌리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며 위안을 삼았다는 것이다.

나라에 중대한 일이 생길 때면 땀을 흘렸다는 밀양 무안면 표충비. 최근 국운이 융성하고 있기 때문에 땀을 흘릴 일이 없는지, 아니면 신통력이 줄어들었는지 '땀 소식'은 뜸하다. 그러나 수년 전만해도 몇 말의 땀을 흘렸다는 뉴스가 간간히 나와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과연 표충비에는 전설로 내려오는 사명대사 신통력이 담겨있는 것일까? 표충비의 영통함을 풀기 위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부산시교육청의 진병화 장학사의 말이다. "땀을 흘리는 원리는 아주 간단하다. 여름철 냉장고에서 찬물을 꺼내 유리컵에 부으면 따뜻한 실내공기가 차가운 유리컵 표면에 접하면서 물방울이 맺히는 현상과 같은 이치이다."

진 장학사는 표충비의 신비를 밝혀내기 위해 땀을 흘렸을 때의 기상 자료를 살펴봤다. 표충비는 4계절 중 봄·가을·겨울철, 비 오는 날(전체의 80%), 기온이 상승한 후 갑자기 떨어졌을 때, 온난다습한 저기압이 지나간 후 대륙성 고기압이 다가올 때 땀을 흘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 표충비각이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는 점도 밝혀냈다.

진 장학사는 "표충비의 비각이 직사광선을 막기 때문에 표충비의 냉각 상태를 유지시킨다"며 "이때 온난다습한 대기가 접근하게 되면 온도 차이 때문에 비석 표면에 응결현상을 일어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표충비 인근에 위치한 홍제사 사적비가 땀을 흘리지 않는 것은 비각이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

그럼 응결현상을 통해 그토록 엄청난 땀을 흘릴 수 있을까?

진 장학사는 실험실에 표충비각 모형을 만들어 땀의 양을 조사했다. 일평균 기온보다 비석 표면이 3.8도 정도 더 냉각된 상태에서 온난하고 습한 공기가 접촉될 때 응결현상이 일어난다는 점을 알아냈다. 또 온도차가 20도일 때 1시간에 3.3ℓ, 12시간 동안 약 40ℓ나 가량 응결된다는 점을 계산해 냈다.

부산대 김항묵(지질환경과학전공) 교수는 "표충비석은 철분과 마그네슘이 많은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다른 암석보다 주변 온도의 영향을 잘 받아 찬 공기에 의해 쉽게 냉각된다"며 "특히 표면이 거울 면처럼 매끌매끌해 안개가 비석 면에 도달하면 목욕탕의 유리처럼 표면 장력에 의해 물방울이 맺히고 중력에 의해 흘러내린다"고 설명했다. 특히 무안면 지역은 기상학적으로 안개가 많은 지리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눈물현상이 일어난다고 덧붙였다.

그럼 표충비의 신통력은 '뻥'일까. 김 교수는 "표충비가 다른 암석도 아닌 특별한 암석으로 만들어지고 유독 안개가 잘 생기는 곳에 설치된 점, 여기에 직사광선을 막아주는 비각까지 갖추게 된 점은 우연의 연속이며,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임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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