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노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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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일 6천여 장 바닥에 깔고 닷새 동안 벽에 주름 잡는…

김순임의 '길 잃은 나무의 숲'(위)과 홍승희의 '깊이에의 강요'. 두 여성 작가의 작품에는 지독한 노동의 과정이 숨어 있다. 사진제공=오픈스페이스 배·대안공간 반디

지독한 사람들이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닌데, 김순임은 6천 장이 넘는 타일을 바닥에 깔았고, 홍승희는 닷새 동안 벽에 주름(?)을 잡았다. 지독한 노동의 결과물은 전시가 끝나고 나면 사진과 영상으로만 남겠지만, 30대 두 여성 작가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  지난해 설치작가 김순임(35)은 경기도 양주의 송추 돌밭에서 사흘 내내 땅바닥에 앉아 퍼포먼스를 했고, 대안공간 반디에서는 일주일 내내 지우개로 바닥을 닦아내고 그 과정을 기록했더랬다. 이번엔 오픈스페이스 배의 바닥에 가로 세로 10㎝의 흑경타일 6천385장을 깔았다. 나흘 동안 오전 9시부터 밤 11시까지 끼니도 거른 채 말이다.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은 뒤 숲으로 변한 전시장으로 들어갔다. 신발 소리마저 숨죽인 채 들어간 공간에는 기장군청서 가지치기한 3t 분량의 나뭇가지들이 숲을 이뤘다. "겨우내 숨죽여 있다가 봄이 되면서 간신히 가지를 뻗었는데, 간판을 가린다는 등의 이유로 폐기된 것들이에요." 나뭇가지들은 힘껏 밀어도 쓰러지지 않는다. 바닥에 고정시키지 않고 가지들의 끝만 이었을 뿐인데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서 있다. 아직 물기를 머금은 나뭇가지들은 흑경타일의 바닥에 비쳐 부유하는 듯하다. "원래는 콘크리트 바닥이었는데, 공간의 느낌을 드러내고 싶어서 타일을 깔았어요. 바닥이 나무였다면 아마 앉아서 며칠 동안 광을 냈을 거예요."

죽은 가지들의 숲을 지나면 갑자기 환한 공간이 나타난다. 숲을 헤매다 만난 반가운 오두막집 같다. 7개의 이불이 수직으로 걸려 있는데, 그 중 하나엔 아기를 안은 할머니의 형상을 솜으로 만들어 넣었다. 한 번도 보지 못 했지만 아기 시절 아버지를 안고 있었던 사진 속의 친할머니다. 잘려나간 나뭇가지들의 피곤한 여정이 편안하게 쉬는 공간이다. ▶길 잃은 나무의 숲-김순임 개인전. 5월 9일까지 오픈스페이스 배. 051-724-5201.

# 사진가 홍승희(31)는 닷새 동안 대안공간 반디의 벽에 '주름'을 잡았다. 흙으로 주름을 잡고 그 위에 석고로 본을 뜬 뒤 페트병 재질의 플라스틱으로 고정하는 지난한 작업을 거쳤다. 벽에 걸린 시계는 아래로 주름이 생긴 채 축 쳐졌다. 컴퓨터를 이용해 디지털로 작업하면 편할 테지만, 그는 포착하고 싶은 순간과 공간을 일일이 연출한 뒤 사진을 찍는다. "작업 하나 하는데 3~4개월은 들어가지만 흘러내리는 주름을 표현하는 게 디지털로 하는 것과는 느낌이 전혀 다르죠." 삶의 무게와 시간의 켜를 수고로운 노동으로 표현하는 거다.

축 늘어진 옷걸이, 아래로 꺼지는 책장, 움푹 파인 침대, 조명의 무게를 못 이기고 늘어뜨려진 천장처럼 만들어진 중력에 의해 매끈한 공간들은 아래로 주름져 있다. 주름은 벽에 매달려 있을 때는 흘러내리는 형상으로, 바닥에 놓여 있을 때는 아래로 파고들며 푹 꺼진다. 그 와중에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 책장에서 떨어지는 책, 넘어지려는 우산처럼 순간적인 움직임은 미세한 흔들림으로 표현된다. 느리게 진행되는 시간과 순간으로 스쳐가는 찰나, 두 가지 시간의 개념을 한꺼번에 포착하기 위한 장치다. "오래된 가죽 소파에 앉았다 일어나면 무게에 의해 생긴 주름의 흔적이 나타났다가 곧 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집니다. 그런 의도되지 않은 순간의 상황을 연출해 사진으로 찍는 거지요." 가라앉은 깊이만큼 삶의 무게는 무겁다. ▶깊이에의 강요-홍승희 개인전. 23일까지 대안공간 반디. 051-756-3313.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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