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의 라틴 스케치] 21 볼리비아 오루로 카니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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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서 '속죄' 물세례, 축제 관람객 우비 진풍경

오루로 카니발에서 가면을 쓰고 군무를 추며 행진하는 볼리비아 아가씨들. 화려한 의상을 입었지만 뿔이 난 검은 가면을 쓰고 백발을 휘날리는 기괴한 모습이다.

볼리비아의 축제는 아주 오래된 고대신화와 가톨릭 신앙이 한데 뭉쳐진 것이 한눈에 보인다. 하지만 광란의 축제를 가만히 지켜보면 표현하기 힘든 그들의 '한'이 느껴진다. 화려하다 못해 촌스럽기까지도 한 치장을 한 원주민들의 춤과 퍼레이드를 보면 어떤 서글픔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볼리비아에서 가장 유명한 오루로 카니발 얘기다.

해발 3,500m의 고원에 위치한 광산도시 오루로에서 벌어지는 오루로 카니발은 1905년에 시작한 오래된 축제로, 2001년부터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볼리비아 최고 축제다.

2001년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구슬 의상·가면 쓰고 4㎞ 행진
집안 손님 폭죽·꽃 뿌리며 환영

황량한 고원을 달려 오루로에 들어서면 맨 먼저 카니발 가면인 디아블라 조각상이 도시 입구를 장식하고 있다. 오루로는 1500년대에 발견된 은광이 있던 곳으로, 첫인상은 서부영화의 무대같이 황량했다. 하지만 도심지는 이미 내일이면 펼쳐질 축제 준비로 들떠 있었다.

카니발 퍼레이드는 2월 첫째 주 금요일부터 시작한다. 다운타운에서 약 500년 된 소카본 언덕의 성당까지 약 4㎞의 거리를 행진하는 것이다. 행렬이 지나갈 도로는 이미 폐쇄되고 길 양쪽으로 나무로 짠 스탠드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길바닥은 페인트로 화려하게 칠해졌다.

전야제 밤이 되자 전국에서 막 도착한 퍼레이드 행렬이 춤을 추며 거리를 행진한다. 다음날 토요일에 있을 퍼레이드를 위해 주제별로 모인 단체들은 대지의 여신 파차마마에게 제상을 차려 소원을 빌며 전야제를 연다. 퍼레이드 행렬과 100년 전통의 카니발을 보기 위해 속속 도착하는 관광객이 이내 한데 어울려 즐겁게 춤을 추고 흥청망청 마신다. 축제는 이미 시작되었다.

토요일은 아침부터 부산하다. 수천 명의 순례자이자 카니발 퍼레이드 참가자는 질서정연하게 자신들의 순서에 따라 출발한다. 이들은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씩 단체로 같은 의상을 입고 줄을 지어 춤을 추면서 4㎞의 거리를 몇 시간에 걸쳐 행진한다.

퍼레이드에 참가하기 위해 지난 1년 동안 돈을 모아 의상을 사고 가면을 빌린다. 의상은 이미 12월부터 준비되었으며, 의상을 만들고 가면을 빌리는 데 최소 100달러에서 300달러 정도가 든다. 남미에서도 아주 가난한 나라인 볼리비아 사람들의 생활 수준에 비하면 정말 큰돈이다.

온갖 구슬로 장식하여 약 60㎏이나 나가는 무거운 의상과 가면을 덮어쓰고 구름 한 점 없는 땡볕 아래 춤을 추면서 4㎞나 되는 오르막을 오르는 일이야말로 자기 몸을 혹사하여 성모께 드리는 신앙심의 증거라고 생각하는 순례자들이다.

순례자들은 퍼레이드가 끝나면 그대로 한숨도 자지 않고 밤새 춤을 추고 술을 마시며 다음날 소카본 성당 앞 광장에서 '알바'라 부르는 새벽을 맞는 의식을 한다. 일요일 오전 5시. '알바'를 하는 성당 앞 광장에 나가 보니 이미 광장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빽빽한 인파로 움직이기 힘들 정도다. 수많은 사람들이 밤새도록 술 마시고 놀다가 새벽을 맞은 것이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또다시 똑같은 루트로 똑같은 복장으로 춤을 추며 퍼레이드를 한다. 축제 동안 날은 화창한데 우비를 걸친 사람들이 많이 보여 의아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갑자기 날아온 물 풍선에 맞아 옷이 홈빡 젖은 후에야 의문이 풀렸다. 축제 동안 사람들은 서로 물 풍선을 던지거나 물총을 쏘고, 심지어 거리를 지나갈 때 건물에서 물벼락을 쏟아 지나가는 행인을 젖게 하는 것이다.

물 뿌리기는 육체를 정화한다는 의미로 속죄를 뜻하지만, 사실 길 가다 물벼락 맞는 일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햇살은 따갑지만 고산이라 그늘에 들어서면 서늘한데다 물을 맞으면 한기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들 우비를 입고 다니는 것을.

물 축제는 퍼레이드 중간에도 벌어지지만 축제 마지막 날인 화요일에 절정을 이룬다. 거리마다 물 뿌리기 전쟁이 펼쳐진다. 아예 물통을 실은 소형 트럭에 탄 사람들이 차를 움직이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표적으로 물 풍선을 던질 때는 무섭기까지 했다.

같은 날, 정오에는 차야 의식을 치른다. 차야는 우리네 고사와 비슷하다. 사람들은 집이나 가게 또는 자동차에 꽃과 꽃종이, 색종이로 치장하고 색색의 종이가루를 뿌린 후 폭죽을 터뜨리고 파차마마에게 맥주를 바치며 온 집안에 뿌리고 마신다.

이날 다른 사람의 집을 방문할 때도 마찬가지다. 대문에서 손님을 맞을 때 폭죽을 터뜨려 손님이 집안으로 들어감을 알리며, 가족들은 손님들을 둘러싸고 꽃과 색종이 끈을 뿌리며 축복의 말과 함께 포옹을 한다. 손님들 역시 방문할 때 폭죽과 색종이 그리고 맥주 등을 사들고 간다. 멀리서 온 이방인도 포옹으로 맞아주며 축복의 말을 건네는 인정에 오루로는 늘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글·사진=정지은·중남미 전문가 blog.daum.net/latin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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