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찬의 통기타 음악창고] (30) 라이브음악의 종합백화점 '오비스캐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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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록음악이 연주되는 코스모스룸. 춤추는 무대는 없고 청중들은 테이블에서 감상만 하고 있다. 김형찬 제공

명동 젊은이들의 놀이터 세시봉이 1969년 문을 닫자 젊은이들은 '오비스캐빈'이라는 새로운 음악업소로 몰려갔다. 유네스코회관 뒤 4층짜리 건물에 층마다 서로 다른 분위기의 라이브 음악업소가 들어찬 라이브 음악 종합백화점이었다. 지하층 '마음과마음'은 맥주를 마시며 악단 연주를 듣는 곳이었고, 1층 '오비스캐빈'은 팝 음악을 들으며 경양식을 먹는 곳이었다. 2층 '코스모스살롱'은 생맥주를 마시며 통기타음악 라이브를 듣는 곳이었고, 3층 '코스모스룸'은 록밴드 라이브를 감상하는 곳이었다. 4층 '파라다이스 라운지'는 칵테일을 마시며 팝가수의 라이브를 감상하는 곳이었다.

'세시봉'이 상업적인 업소였지만 특유의 문화적 분위기를 중시해 술은 판매하지 않았고 젊은이들이 주동이 되어 내용을 채워나갔던 자율적 단일업소였다면, '오비스캐빈'은 업주가 내용을 결정하고 술을 판매하는 상업적인 종합업소였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은 모두 집대성해 당대 명동의 음악유행을 선도했던 포스트 세시봉이었다.

세시봉 문 닫자 다양한 장르의 음악공연 명소로
'살롱' 이라는 대형상업업소 새로운 트렌드 주도


특히 2층의 '코스모스살롱'은 통기타 가수들의 데뷔무대이자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 수 있는 생업전선이기도 했다. 당시에 대기업 신입사원 한 달 월급이 1만 8천 원일 때 오비스 캐빈은 한 달 20만 원을 받았으니, 왜 양희은이 '오비스캐빈'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빚을 갚을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다. 테이블이 30개 정도였으니 공연장도 꽤 넓었다.

'오비스캐빈'이 개업한 1969년은 조영남이 '쇼쇼쇼'에 출연해 새로운 스타로 등극할 때였고, 트윈폴리오가 한창 주가를 날릴 때였다. 따라서 개업 때부터 조영남과 트윈폴리오가 '코스모스살롱'에 출연하면서 단박에 장안의 명소로 떠오를 수 있었다. 당연히 인기 데이트 코스였지만 정작 여성들은 남자가수에 푹 빠져 남자친구에게 무관심하기 일쑤여서 데이트로 따라오는 남성들에게는 비호감이었다.

2층의 '코스모스살롱'이 통기타 음악의 메카였다면, 3층의 '코스모스룸'은 록음악의 메카였다. 신중현이 신중현 사단의 음악인들을 동반하고 사이키델릭 사운드의 작곡 발표회를 열었고, 히식스의 김홍탁이 지미 헨드릭스 복장을 하고 이빨로 기타를 물어뜯던 곳도 이곳이었다. 펄시스터즈, 김추자, 이정화, 박인수, 히파이브, 라스트챤스, 키보이스 등 당대의 사이키델릭 음악인과 장안을 주름잡던 록밴드가 모두 여기에 출연했다.

'오비스캐빈'이 선보인 '살롱'이라는 업소 형태는 이후에 라이브 무대를 갖춘 대형 음악살롱의 등장을 선도했다. '아마존', '라스베가스', '실버타운', 영화 '고고70'의 무대가 되었던 '닐바나' 등의 대형 음악살롱이 1970년대 명동 업소의 새로운 트렌드로 떠올랐다. 음악감상실 이후 살롱이라는 대형상업업소의 등장은 초기에 순수했던 젊은이 문화가 주류음악권으로 포섭됨에 따라 상업화의 길을 걷게 됨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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