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空間)… 그곳에 가고 싶다] ⑨ 부산 기장군 철마면 녹유당(綠遊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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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그대로 '초록이 노니는 집'

장영준 교수 부부가 오랜 세월 가꾸고 있는 부산 기장군 철마면 '녹유당'. 푸른 숲과 정원에 둘러싸인 이 집의 꼭대기 다락방에 앉으면 고즈넉한 마을과 거문산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피아노 선율이 흐르는 숲 속 집에서 유유자적 살아갈 수 있다면.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마음 맞는 이들과 향기로운 차 한 잔을 음미할 수 있다면….

그리 먼 곳도 아닌, 부산 기장군 철마면에서 그런 낙원을 찾아내었다. 바로 '녹유당(綠遊堂)', 초록에 노니는 집이란 뜻에서 그리 붙였단다. 알프스를 떠올리게 하는 집에서 자연주의 삶을 실천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주인장과 절친하다는 기독교선교박물관 안대영 관장을 조른 끝에, 지난 3일 오후 그의 손을 잡아 이끌고 녹유당 문을 두드릴 수 있었다.

유럽형 갈색 지붕 하얀 이층집
소라형 계단 오르면 다락방 나오고
200여 종 식물 자라는 정원 숲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문화공간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한 장면처럼, 큰 나무에 가려진 대나무 담장 옆으로 난 조그만 출입문을 지났더니, 거짓말처럼 드넓은 잔디밭과 숲 속 집이 눈앞에 나타났다.

반백의 머리를 어깨에 닿을 만큼 기른 부산대 장영준 명예교수, 하얀 꽃무늬 원피스 옷을 입고 둥근 챙모자를 눌러쓴 김미희 씨 부부. 반갑게 손을 잡기가 무섭게 '갤러리'라 부르는 너른 공간에 앉히고 차를 내온다. "그동안 누가 집을 빌려 영화를 찍고 싶대도 거절했고, 언론 같은 데 한 번도 공개하지 않고 살아왔는데…. 아무튼 할 수 없지요."

녹유당 뒤편 숲 속 '야생 정원'으로 이어지는 길.
금정구의 아파트에 살던 부부는 15년 전 이곳에 들어왔다. 집과 정원, 텃밭과 숲의 넓이가 무려 5천㎡에 달한다. 5년 전 집 짓기 경험이 많은 친구의 도움으로 집도 새로 지었다. 순전히 '좋은 사람들과 함께할 문화 공간을 갖고 싶어서'였다.

아내가 추억에 잠긴 듯했다. "부산 경남 일대에서 안 타 본 마을버스가 없을 거예요. 일본 유학을 다녀와서 젊을 때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서 무리 없이 정착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 롤 모델은 미국의 자연 속에서 살다 간 타샤 튜더 할머니예요."

듣고 보니, 김 씨는 국악을 전공했고, 1993년 부일미술대전에 입상한 예술가였다. 손수 옷을 만들어 입고, 음악과 그림을 벗 삼아 집과 숲을 가꾸는 일에서 삶의 행복을 찾고 있었다. 장 교수도 덩달아 거문고, 대금을 연주하고 차를 마시는 여유를 즐겼다. 10년 전부터 지인들을 초청해 조촐한 음악회도 열고 있다. "장 교수가 연못가에서 대금을 연주하면 신선이 따로 없지." 안 관장이 거든다.

자연 앞에서 건축 미학을 끼적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만, 그저 한정된 지면이 눈물 나도록 안타까울 뿐이다.

집은 총면적이 330㎡가량. 마당에 들어서면 아래가 각진 유럽형 갈색 지붕의 하얀 이층집이 왼쪽과 정면으로 이어져 있다. 높은 언덕 지형을 그대로 살려 지은 안채가 맞은편 거문산을 향해 불쑥 솟아 있다. 그 뒤로 거대한 참나무가 그림처럼 솟았다.

달빛이 비치면 은은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뒤뜰 쪽 거실.
왼쪽 집 1층은 차방과 갤러리(탁자와 의자, 까만 벽난로가 있다), 그 위로 작은 발코니가 예쁜 아들의 방이다. 계단을 올라 안채 현관에 들어서면 손수 만든 커튼이 달린 거실과 안방 부엌이 소담하다. 안채의 포인트는 철기둥을 빙빙 돌아 매달린 소라형 계단을 오르면 나오는 '다락방(多樂房)', 그리고 뒤뜰과 산이 어우러지는 거실 안쪽의 풍경이다. 다락방에는 책과 보이차가 가득하고, 항아리와 꽃이 놓인 나무덱이 내달린 뒤뜰은 그림 그 자체다. 통창에는 새들이 다치지 말라고 격자를 넣었다.

휘파람새가 우는 정원을 둘러보면 입이 쩍 벌어진다. 말이 정원이지, 무려 200여 종의 꽃과 나무, 온갖 나물과 풀이 살고 있는 숲이다. 산딸나무가 선 '잔디 정원', 숲 같은 공간은 '자연 정원', 매실나무와 온갖 채소가 자라는 텃밭은 '부엌 정원', '비밀의 정원', '명상 정원'이라 공간마다 이름을 붙였다. 딱 먹을 만큼 차가 나는 차밭도 있는데, 부부가 직접 모든 일을 해낸다.

부산시사편찬위원회가 펴낸 '부산의 자연마을'에서 안 관장은 녹유당을 이렇게 소개했다. '달이 휘영청 밝은 가을 밤, 아홉산 기슭 늘어진 홍송 사이로 뜨는 보름달을 바라보면서 열리는 작은 음악회는 참으로 감동적이다.' "또 만납시다!" 쪽문을 나섰더니, 모든 게 꿈결이었나 분간할 길이 없다. 박세익 기자 run@busan.com 사진=정대현 기자 j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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