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구 치기 힘든 건 뇌가 똑똑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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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브볼을 치기 어려운 이유는 오히려 뇌가 똑똑하기 때문?'

야구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변화구로 불리는 커브볼.

유니스트 권오상 교수, '커브볼 착시' 비밀 밝혀
"시야 벗어날수록 뇌는 계산된 경로로 물체 파악"


큰 포물선을 그리며 뚝 떨어지는 커브볼의 궤적을 타자가 실제와 다르게 인식하는 '커브볼 착시(curve ball illusion)'의 비밀을 울산과학기술대학교(유니스트) 권오상 교수(사진) 연구팀이 풀어냈다.

뇌가 눈에 보이는 야구공 자체보다 야구공의 이동 경로를 더 중요한 정보로 판단해 공의 위치를 정교하게 추론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야구에서 투수가 회전을 준 공은 구부러지면서 포수의 글러브로 내리꽂힌다. 타자는 눈으로 공의 경로를 쫓지만, 공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고 치기는 어렵다.

뇌가 공의 궤적을 실제와 다르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커브볼 착시'다.

권 교수팀은 단순한 착시로 여기던 이 현상에 한 가지 의문을 품었다. 인간이 단순히 물체의 움직임을 탐지하는 게 아니라 '물체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통합적인 원리가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연구 결과, 뇌는 움직이는 물체를 시야의 어느 부분에 두느냐에 따라 위치 해석을 바꾼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가령 움직이는 물체를 시야 중심에 두면 실제 위치 그대로 파악한다.

하지만 움직이는 물체가 시야 주변부로 갈수록 뇌는 그 물체가 이동해온 경로에 의존해 물체의 위치를 계산한다. 초점에서 멀어져 부정확해진 위치 정보를 보완하기 위해서다.

즉, 커브볼이 올 때 타자의 뇌는 눈에 비친 공의 모습을 쫓다가 미리 계산해둔 이동 정보를 먼저 고려해 공의 위치를 파악하기 때문에 실제 공의 위치와 차이가 난다는 의미다.

권오상 유니스트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교수는 "내비게이션이 터널 등에 들어갔을 때 GPS 신호가 부정확해지면 차가 지나온 경로에 더 의존해 현재 위치를 파악하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밝혔다.

그는 "커브볼 착시는 뇌가 오히려 똑똑해 정교한 추론을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으로, 우리 뇌가 공학자들이 고안한 최적화된 알고리즘을 이미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 결과는 지각적 학습 연구와 결합해 자폐아나 고령자 등 특수 집단에 대한 진단이나 재활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권 교수는 미국 로체스터대 재직 당시 이 연구를 진행했다. 관련 논문은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 지난 15일자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교신저자는 두예 타딘(Duje Tadin) 로체스터대 뇌인지과학과 교수다.

권승혁 기자 gsh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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