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기업 100년 프로젝트] 4.동성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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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업·공격투자로 '매출 1조' 신화 쓰다

박충열 동성코퍼레이션 대표가 동성화학 창업 당시 사용된 산업용 용기 앞에서 동성그룹의 역사와 경영철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병집 기자 bjk@

동성그룹은 지역 기업계에 '맏형'이라고 불릴만 한다. 작은 공장이 그룹으로 성장하는 필수 단계를 동성그룹은 지역의 다른 기업보다 한발 앞서 겪고 커왔다.

부산의 신발공장이 쉬지않고 돌아가던 70~80년대 기술력 하나로 세계 시장을 주름잡았다. 외환위기 당시 과감한 방법으로 조기에 위기를 벗어났고, 지주회사 형태로의 전환도 빨랐다. 1조 원에 육박하는 매출 달성도 이미 이뤘다.

70년대 진취적 기술 투자
신발 접착제 개발 큰 호응
IMF 때 과감한 기업 매각
조기에 위기 벗고 그룹 도약
화학·에너지 등 고른 성장
"변화와 혁신이 성장 비결"


박충열 동성코퍼레이션 대표는 "60여 년 꾸준히 안정적인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끊임없이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나섰기 때문"이라며 "변화와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게 비결이다"고 평가했다.

동성그룹은 1952년 부산 동구 범일동의 작은 가내공장인 '건민고무'가 전신이다. 창업주 백제갑 회장은 평안북도 신의주공고를 졸업한 피난민 출신 엔지니어였다. 그가 만든 고무접찹제가 인기를 끌자, 백 회장은 1959년 동성화학이라는 공장을 세우고 본격적인 기업가가 되었다.

동성화학의 신발 접착제가 큰 성공을 거뒀다. 기술력이 이뤄낸 쾌거였다. 당시 신발공장들의 가장 큰 고민은 밑창이 잘 떨어지는 거였다. 동성화학의 접착제를 쓰니 문제가 해결되었고, 신발 수출에 가속이 붙었다. 동성이 있어 대한민국 신발산업이 부흥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성화학의 접착제도 수입품을 대체하며 불티나게 팔렸고, 나이키 등에도 납품되면서 글로벌 신발 접착제의 90%를 장악했다.

박 대표는 "창업주는 소탈하면서도 정열적인 분이셨다"며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부산을 방문했을 때 경호원을 뚫고 즉석에서 면담을 신청해, 공업 부자재의 국산화를 역설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창업주의 진취적인 경영철학은 동성그룹의 경영스타일로 자리잡았다. 과감한 기술혁신 투자로 접찹제 신화를 썼듯, 80년대말엔 호성케맥스·팬텀사·동성기공을 설립하며 사업 다각화에도 지역 기업들을 대표해 앞장섰다.

1998년 외환위기 속에서 동성그룹의 진취성과 결단력은 극명하게 표현된다. 동성화학은 접착제 등 주력 사업들을 외국 기업에 매각하며 1027억 원의 자금을 마련해, 유동성 위기를 넘어섰다. 국가에 손을 벌리기 보다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결단이었다. 지금도 외환위기 극복 모범사례로 동성그룹이 거론된다.

박 대표는 "창업주가 강조한 '바른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라'가 회사의 핵심 경영방침이다. 그래서 부도 처리로 국가나 지역사회에 부담을 주기보다 자립하는 방법을 선택했다"며 "돌아보면 회사의 리모델링을 통한 재도약의 기회가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위기를 겪으며 단련된 동성그룹은 꾸준히 사업을 재정비하며 내실을 다졌다. 2003년 동성화학도 흑자로 돌아섰다. 2008년 동성홀딩스를 설립하며 파격적으로 지주회사 체제를 도입했다.

2014년 주력 사업인 화학분야를 비롯해 그린에너지와 메디칼 사업의 고른 성장으로, 그룹의 매출이 1조 원에 육박하는 기록을 냈으며 영업이익은 꾸준히 증가세다. 2015년 동성홀딩스가 동성코퍼레이션으로 사업지주회사로 전환했고, 동성화학·동성티씨에스·동성화인텍·동성에코어·제네월 등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박 대표는 "친환경, 에너지절감을 모토로 인류의 삶을 향상 시키고 세상에 기여한다는 게 우리 회사의 존재이유다"며 "그러기 위해선 정체하면 안된다. 끊임없이 기술을 혁신하고 경영 효율성을 위한 변화를 이뤄내야 한다"고 밝혔다.

김백상·김수진 기자 k1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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