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다음 침공은 어디?’로 본 조화로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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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음 침공은 어디?’ 스틸컷. 부산일보DB 영화 ‘다음 침공은 어디?’ 스틸컷. 부산일보DB

최근 한 권의 소설책에서 비롯된 페미니즘 논의를 접하면서 복잡한 심정이었다. 이 지면에서 그 소설로 불거진 페미니즘 논쟁을 언급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페미니즘 논의에서 누군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왜 그런 논의가 나왔는지 함께 공감해주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젠더 발언이 나올 때마다 ‘정치적 성향’ 또는 ‘극렬 페미’라고 단정하고 말을 듣지 않으려 한다면 우리 사회의 젠더감수성은 언제나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마이클 무어의 영화 한 편이 떠올랐다.

소설 계기 ‘듣기’ 중요성 절감

불편한 이야기 영화로 만드는

마이클 무어 감독 영화 떠올라

더 나은 유럽 문화·제도 찾아

세상 더 나아질 수 있다 믿어

행복 사회 조건 ‘여성성’ 제시


무어는 재미있는 감독이다. 미국 사회에 잠재하고 있는 이야기. 누구나 알고 있다고 믿지만 막상 말로 풀려고 하면 머뭇거릴 만한 주제. 어떤 이들에겐 불편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감독이 바로 무어다. 이때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최소한 그가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발언이 문제적이라면, 영화를 보고 판단해야 옳다고 믿는다. 무어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으로 늘 ‘문제적 감독’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지만 자신의 주장과 반대에 있는 사람들과 싸우지 않는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영화로 보여주며 이에 대한 판단은 관객에게 맡긴다.

무어는 2004년 ‘화씨 9/11’를 통해 9·11테러 당시 조지 부시 행정부의 무능을 비판했으며 최근작 ‘화씨 11/9’를 통해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으로 전선을 옮긴다. 무어는 수없이 많은 영화들을 통해 ‘미국이 왜 이 지경까지 왔는가’를 끈질기게 추적한다. 나는 그의 영화들 중에서 2016년 개봉한 ‘다음 침공은 어디?’를 언급하고 싶다. 그는 언제나 그렇듯 이 영화에서도 카메라를 무기로 삼아 미국이라는 나라를 신랄하게 공격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다른 방식이다. 무어는 미국의 대표자로, 성조기를 들고 9개의 나라를 찾아가 좋은 문화, 훌륭한 제도를 침략해 미국으로 훔쳐가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힌다. 칼날 같은 비판과 어이없는 웃음이 여전한 영화다.

‘다음 침공은 어디?’에서는 노동, 교육(학교급식과 무상교육), 범죄자(경제범)를 다루는 법, 인종문제까지 유럽의 좋은 문화와 제도를 찾아다닌다. 무어의 말대로라면 미국이 좋아하고 잘하는 폭력적 침공이 아니라, ‘꽃을 따기 위한 평화적인 침공’이라는 것이다. 이상하게 무어의 논리에 설득 당한다. 물론 이탈리아의 엄청난 실업률이나 슬로베니아의 재정 문제 등은 의도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그건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무어는 어차피 유럽의 좋은 모델만 침공하기로 작정했기 때문이다. ‘낙관론자’라고 주장하는 그는 미국에 잠재해 있는 문제들을 말하지만, 여전히 세상이 더 나아지고 (혹은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사실 이 영화를 언급하는 것은, 영화에서 가장 흥미있었던 부분 때문이다. 무어는 이 거대한 신자유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 행복한 사회의 조건이 되기 위한 방안을 ‘여성성’에서 찾고 있다. 낙태를 합법화한 튀니지를 통해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권을 갖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삶을 통제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으며, 양성평등국가 아이슬란드에서는 여성의 DNA에서 평화와 공존의 실마리를 찾는다. 무어는 여성들의 ‘돌봄’과 ‘보살핌’이 바로 폭력을 줄인 요인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남성사회가 또는 시대가 여성들이 가진 돌봄과 보살핌을 과소평가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는 행복했을 거라고 말한다. 오해하지 말자. 여성들의 조화로움(공존의 삶)을 이해할 필요가 있지 않냐는 무어의 시선은 남성사회에 대한 조롱이 아니다. 좋은 사회,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하나의 조건을 여성성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김필남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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