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감자 후분양제] 부실 시공 참고 살아라? 소비자가 ‘을’ 되는 선분양제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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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부실시공과 하자, 자재 임의 변경 등이 끊이지 않으면서 후분양제 도입 요구의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최근 부실시공 논란이 빚어진 부산 강서구 명지국제신도시 ‘중흥S클래스 더테라스’에서 입주 예정자가 부실시공 여부를 살펴보는 모습(왼쪽)과 이 아파트 선분양 당시 견본주택 내부 모습. 부산일보DB 아파트 부실시공과 하자, 자재 임의 변경 등이 끊이지 않으면서 후분양제 도입 요구의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최근 부실시공 논란이 빚어진 부산 강서구 명지국제신도시 ‘중흥S클래스 더테라스’에서 입주 예정자가 부실시공 여부를 살펴보는 모습(왼쪽)과 이 아파트 선분양 당시 견본주택 내부 모습. 부산일보DB

‘국민 주거공간’이 된 아파트의 부실시공, 저급 자재 사용 등의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덩달아 후분양제 도입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커진다. 최근 일부 단지에서는 시공사가 견본주택과 다른 자재를 썼다며 입주 예정자들이 반발하고, 한 단지에서는 부실시공을 주장하는 입주 예정자들이 계약금을 포기하면서도 계약을 대거 해제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해 정부가 점화한 후분양제의 도입 논의가 불붙고 있다.

강서 명지 ‘중흥S클래스더테라스’

누수 등 부실 시공·하자 이유로

입주 예정자 152세대 계약 포기

가구당 계약금 4500만 원 날려

“아파트라는 제품 못 보고 구매

선분양제에서는 폐해 계속 발생”

대다수 계약 해제… 초유의 사태

“해결책은 후분양제” 목소리 커져

정부 공동주택 분양가 공시 항목

62개로 확대하는 개정안 마련도

■끊임없는 ‘부실’ 논란

부산 강서구 명지국제신도시 ‘중흥S클래스 더테라스’(222세대) 입주 예정자 중 152세대는 건설사가 제시한 보상금 2000만 원을 거절하고 지난달 말 가구당 4500만 원가량의 계약금과 입주를 포기했다. 누수와 벽체 휨, 곰팡이 등 부실 시공·하자와 관련, 시공사가 보수한 뒤에도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는 주민들의 반발에도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이 “중대한 부실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준공 승인했기 때문이다.

계약을 해제한 김정용(35) 씨는 “계약 해제로 총 70억 원가량의 계약금이 시공사에 귀속되는데, 왜 시공사의 책임을 계약자들이 떠안아야 하느냐”며 “입주를 손꼽아 기다리며 기존 집을 팔았거나 전·월세로 거주 중인 사람들은 눈물로 하루하루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공사인 중흥 측이 계약 해제분의 중도금과 잔금을 떠안아야 해 피해가 크다고 주장하지만, 부실시공의 책임은 시공사가 져야 하는 것”이라며 “시공사는 계약 해제분을 장기 전·월세로 돌린 뒤 추후 재분양해 자금을 충당하려고 할 게 뻔한데, 결국 갈 곳 없는 우리들만 피해를 보게 됐다”고 호소했다.

입주를 결정한 사람들도 ‘부실 아파트’라는 불명예가 따라다니며 재산 피해 등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달 입주가 진행되는 부산 동래구 ‘동래꿈에그린’(732세대)은 견본주택에 설치된 것과 다른 창호가 설치돼 논란을 빚는다. 입주 예정자 김 모(36) 씨는 “건설사는 같은 대기업 제품이라 성능에 차이가 없다지만, 가격 차이에 대한 설명이나 자재 변경에 대한 알림이 없었다”고 말했다.

경남 김해시 주촌면 ‘김해센텀두산위브더제니스’(3435세대)도 입주 예정자들이 시행사인 삼정 등과 시공사인 두산건설을 상대로 저급 자재 사용, 조경·잔디 면적 축소, 연못 삭제 등의 일방적 변경 등을 주장하며 반발한다.

■선분양제 폐해 언제까지

아파트 부실시공과 하자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부지기수지만 대다수의 입주(예정자) 카페에서는 ‘아파트값 떨어진다’는 이유로 대외적으로 이를 숨긴다. 시공사에 대한 대응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어 소비자가 ‘을’이 되기도 한다. 아파트가 주거 공간을 넘어 자산 증식과 재테크 수단으로 여겨지면서 부실시공과 하자를 쉬쉬하는 경우는 더욱 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명지 중흥’ 입주 예정자 대다수가 계약을 해제하는 초강수를 둔 것은 그만큼 부실 시공과 하자가 심각했다는 방증이라고 본다.

김혜신 솔렉스마케팅 부산지사장은 “건설사는 착공할 때 마감재도 다 신고하도록 돼 있는데, 자재 변경 시 입주 예정자들에게 고지해야 한다”며 “아파트라는 하나의 제품을 못 보고 구매를 결정해야 하는 선분양제하에서는 이런 폐해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변심이나 대출 문제 등으로 계약을 해제하는 경우가 일부 있지만, 부실 시공 문제를 제기하며 대다수가 계약을 해제한 건 초유의 일”이라며 “심각한 부실로 입주 예정자들이 계약금 환불을 받으려면 부실시공의 귀책 사유가 건설사에 있다는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는 점도 소비자들에겐 불리하다”고 덧붙였다.

부실시공과 하자에 대한 분쟁 신고도 2015년부터 크게 늘었다. 국토부 산하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하자 분쟁 신고 건수는 2014년 1676건에 불과했지만, 2015년 크게 늘어 4244건, 2016년건 3880건, 2017년 4087건, 지난해 3819건이었다. 조정위에서 ‘하자’로 판정된 건수는 전체의 약 44%에 달했다.

■소비자 권익 보호 본격화

부실시공과 하자 등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철저한 관리 감독과 강력한 제재가 요구되지만, 관련법 부족과 실효성 부족으로 후분양제가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6월 공공 부문부터 후분양제를 도입하겠다는 로드맵을 내놨다. 공정 60% 이후부터 후분양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민간 부문에는 후분양 시 공공택지 우선 분양 등의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게 골자다. 정부는 최근 공급 물량이 많아 후분양제로 전환을 시작하는 적기라고 판단했다. 정부는 추후 성과 평가 후 공정률 상향도 검토할 계획이다.

경기도는 정부보다 한발 더 나아가 경기도시공사 사업 물량부터 공정 80% 이후에 분양할 뿐만 아니라 100% 완공 뒤 분양하는 완전 후분양도 추진 중이다. 또 경기도시공사가 시행하는 계약금 10억 원 이상 공공 건설공사의 원가를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고, 경기도시공사와 민간 건설사가 공동 분양한 공공 아파트의 건설원가(분양 원가)도 지난해 광역지자체로서는 처음 공개했다.

분양 원가 공개와 관련, 정부는 지난해 11월 공공택지 내에서 공급하는 공동주택을 대상으로 한 분양가격 공시 항목을 현행 12개에서 62개로 확대하는 개정안을 마련해 입법예고했다. 부산시와 부산도시공사에서는 후분양제와 분양 원가 공개 논의가 아직 없지만, 현재 심사 중인 개정안이 이르면 다음 달 시행되면 공공택지 내 아파트 분양가 공개가 부산에도 적용될 전망이다.

부산도시공사 관계자는 “2020년 첫 착공 예정인 에코델타시티 아파트 공급 때부터 분양 원가 공개가 적용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선분양제가 주택 공급 확대, 건설·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해 1977년 정책적 측면에서 도입된 뒤 줄곧 시행돼 마치 ‘정답’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소비자의 알 권리와 선택권 중심에서 바라보면 후분양제가 당위성을 갖는다고 지적한다.

강정규 동의대 부동산대학원장은 “선분양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몇 나라가 되지 않고 미국과 일본, 베트남, 중국도 후분양제를 한다”며 “후분양제로 급격히 전환하면 부작용도 있을 수 있는 만큼 민간 부문에 규제가 아닌 인센티브를 주는 방법으로 점진·단계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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