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지역 로스쿨] 상. 생사 갈림길에 선 지역 로스쿨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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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인재 할당’ 격차 벌리고 ‘수도권行 반수생’ 분위기 흐리고

수도권과 지역 로스쿨 간 변호사시험 합격률 격차가 커지면서, 합격률이 저조한 지역 로스쿨들 사이에 ‘로스쿨 통폐합’에 대한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사진은 부산대 로스쿨 건물. 이재찬 기자 chan@ 수도권과 지역 로스쿨 간 변호사시험 합격률 격차가 커지면서, 합격률이 저조한 지역 로스쿨들 사이에 ‘로스쿨 통폐합’에 대한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사진은 부산대 로스쿨 건물. 이재찬 기자 chan@

2009년 로스쿨 제도가 도입된 이래 지난 10년간 로스쿨은 1만 명이 넘는 신(新)법조인을 배출하며 법률서비스의 문턱을 낮추고 다양한 인재를 양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변호사시험(이하 변시)의 합격률은 낮아졌고, 로스쿨은 변시를 준비하는 ‘고시학원’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구나 수도권 로스쿨과 지역 로스쿨 간 합격률 격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합격률이 저조한 지역 로스쿨을 중심으로 ‘통폐합 위기설’마저 불거지고 있다.

해당 지역 대졸자 20% 선발

2019학년도 ‘권고’→‘의무’ 강화

수도권-지역 로스쿨 격차 심화

최근 3년간 대형로펌 5곳 취업자

지방대 졸업자는 9명에 불과

취업난에 수도권 재입학 준비 증가

로스쿨 정원·변호사 수 감축 대안

결국 ‘로스쿨 통폐합’ 논의 제기

■지역인재 할당? 이중고 지역 로스쿨

지역 로스쿨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엇일까. 지역 로스쿨 학계에서는 공통적으로 ‘지역인재 20% 의무선발’ 제도를 가장 먼저 꼽는다.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은 지난 2015년부터 25개 로스쿨 가운데 서울과 인천·경기를 제외한 11개 로스쿨에 대해 입학정원의 20%(강원·제주권은 10%)를 해당 지역의 대학을 졸업한 학생으로 채우도록 권고했다. 그런데 교육부는 2019학년도 로스쿨 입시부터 이 같은 규정을 ‘권고’에서 ‘의무’로 바꿨다.

지역 로스쿨들에 이러한 ‘지역인재 20% 의무선발’은 적잖은 부담이 되고 있다. 지역의 우수한 인재를 선발한다는 취지는 공감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해당 지역 대학을 졸업한 우수한 인원을 의무적으로 20% 이상 충원하기가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부산대 로스쿨 이정표 원장은 “지역에서 양성된 법조인이 타지로 유출되는 것을 막으려는 취지는 이해한다”면서도 “그러나 이 제도가 수도권과 비수도권 로스쿨 격차를 심화시키는 것 또한 사실이다”고 말한다. 김순석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전남대 로스쿨 원장) 역시 “현재 지방대 출신 선발 의무에서 지방 고등학교 졸업생 출신까지 범위가 확대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 로스쿨의 또 다른 고민 ‘반(半)수’

동아대 로스쿨 건물. 이재찬 기자 chan@ 동아대 로스쿨 건물. 이재찬 기자 chan@

지역 로스쿨생의 고민은 낮은 변시 합격률만이 아니다. 변시에 합격하더라도 서울의 로스쿨 출신에 비해 취업 장벽은 높기만 하다. 실제로 최근 3년간 국내 대형로펌 5곳(김앤장·광장·태평양·세종화우)에 취업한 변호사 322명 중 지방대 로스쿨 졸업자는 9명(2.8%)에 불과했다. 검찰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새로 임용된 검사 47명 중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로스쿨 출신이 19명(40.4%)이나 됐다.

부산대 로스쿨에 재학 중인 정 모(25) 씨는 “지역 로스쿨생 사이에선 대형로펌 취업을 두고 ‘원시적 불능(처음부터 이행이 불능한 것을 뜻하는 법률용어)’이라고 말한다”며 “사법고시 땐 연수원 성적을 판단 기준으로 삼기라도 했지만, 로스쿨은 대개 변시 합격을 전제로 학기 중에 취업 연수를 나가기 때문에 오히려 출신 학교가 판단 기준으로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털어놓았다.

이 때문에 최근 지역 로스쿨에서는 이른바 ‘반수생(학교에 들어가서 재수하는 학생)’이 급증하고 있다. 로스쿨에 합격하고도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하는 수도권 로스쿨로 재입학하기 위해 다시 법학적성시험(LEET)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지방 로스쿨의 학업 분위기를 해치고 로스쿨을 고사시키는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수’를 막기 위해 일부 지역 로스쿨에서는 LEET 일정에 맞춰 자체 학사 일정을 잡기도 한다. 동아대 로스쿨의 경우 지난해부터 새롭게 ‘진급시험’ 제도를 도입하고, 그 시험 일정을 일부러 LEET 일정과 겹치게 하고 있다.

■고개 드는 통폐합 논의

로스쿨 도입 이래 변호사 수가 크게 늘었다. 대한변협에 따르면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던 지난 2009년 9612명이던 전국의 변호사는 지난해 2만 5838명으로 배 이상 늘었다. 대한변협은 변호사 수의 급증이 법률시장에 ‘공급 포화’를 가져오고, 과도한 경쟁으로 법률서비스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변협은 변호사 수의 빠른 증가세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방법은 로스쿨 정원과 변시 합격자 수를 줄이는 것이다. 결국 로스쿨 통폐합으로 관심이 옮아간다.

로스쿨별 변시 합격률이 현저한 차이를 보이면서 일부 경쟁력이 떨어지는 로스쿨을 정리해야 한다는 논리가 이러한 ‘통폐합’ 주장에 힘을 보탠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로스쿨은 대부분 지역에 존재한다. 김현 대한변협 회장은 “로스쿨 입학 정원은 1500명, 연간 배출 변호사 수는 1000명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며 “이를 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로스쿨을 통폐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로스쿨 학계에선 “변호사 공급의 증가는 국민 권익보호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대도시가 아닌 도서 산간지역에서도 변호사를 찾을 수 있게 돼 국민들의 법률서비스 접근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강력히 반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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