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796> 부끄러운 ‘부끄런’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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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지난주에 이어 동사/형용사 활용 이야기를 계속한다. 지금에야 하는 말이지만, 몇 해 전에 어느 영화가 흥행하는지 꽤 신경 쓴 적이 있다. 홍상수 감독이 연출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영화.

완성도나 예술성, 뭐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제목에 쓰인 저 ‘맞다/틀리다’ 때문이었다. 지난주에 이 난에서 봤듯이, 맞다/틀리다는 동사여서 활용꼴로 써야 한다. 하니, ‘그때는 맞았고 지금은 틀린다’쯤 돼야 어색함을 피할 수 있었던 것. 비슷한 꼴인 ‘그때는 걷고 지금은 달리다’를 보자면, ‘그때는 걸었고 지금은 달린다’라야 제대로인 것과 마찬가지.

한데, 알고 보면 저렇게 신경 쓰이는 영화 제목이 한둘이 아니었다. 맞춤법이나 외래어표기법을 어긴 제목들을 보자.

*미쓰 홍당무/미쓰백-‘미쓰’는 ‘미스’라야 했다. 외래어 표기법에서, 영어는 된소리(경음)를 쓰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역시 ‘싸이보그’는 ‘사이보그’라야 했다.

*바람 피기 좋은 날-우리말에 ‘바람피다’는 없고 ‘바람피우다’만 있다.

*쿵푸 팬더-‘무기 없이 유연한 동작으로 손과 발을 이용하여 공격하는 중국식 권법’은 ‘쿵후’라 한다. 대나무를 주식으로 먹는 멸종 위기종 곰과 포유류 이름은 ‘판다’. 해서, ‘쿵푸 팬더’는 ‘쿵후 판다’라야 외래어 표기법에 맞는 표기였다.

*커피 느와르: 블랙브라운-프랑스어 ‘noir’는 ‘누아르’로 쓴다. 암흑가를 다룬 영화는 ‘필름 누아르’. 참고로, 제목이 온통 외래어인 이 영화는, 한국 영화다.

*어벤져스-외래어 표기법에서 구개음 ㅈ, ㅊ 뒤에는 ‘ㅑ, ㅕ, ㅛ, ㅠ’를 쓰지 않는다. ‘ㅏ, ㅓ, ㅗ, ㅜ’와 잘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쥬스, 텔레비젼, 쵸콜릿’이 아니라 ‘주스, 텔레비전, 초콜릿’으로 쓰는 것. 그러니 ‘어벤저스’라야 했다.

*반창꼬-2012년 개봉한 이 한국 영화는 제목 때문에 꽤 시끄러웠다. 일부러 ‘반창고’를 틀리게 표기했다는 얘기도 있었고, ‘맞춤법에 어긋난 잘못된 표현이라는 걸 자막으로 고지해야 한다, 못 한다’ 논란까지 일었던 것.

이런 여러 사례를 보면, 아예 표기법·맞춤법에 신경을 쓰지 않았거나, 일부러 소란스럽게 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몰라서 틀렸다면 쑥스러운 일이고 ‘구설수홍보(노이즈 마케팅)’ 때문이라면 부끄러운 일일 터. 해서, 어제 개봉한 대만 영화 ‘장난스런 키스’도 조심스럽게 지켜보는 중이다. ‘장난스런’은 ‘장난스러운’의 잘못이기 때문인데, 우리말에서 ‘-러운’은 ‘-런’으로 줄일 수 없다. jinwoni@busan.com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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