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제3의 성(性)

김은영 논설위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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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퀼린 바르뱅은 19세기 프랑스인으로 30세에 자살했다. 20~21세기를 살았던 미국인 데이비드 라이머는 39세에 생을 마감했다. 영화로도 알려진 티나 브랜든은 21세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이들은 젠더 이분법에 희생된 실존 인물이다. 젠더 이론가인 주디스 버틀러 전문 연구자인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조현준 교수는 이들 세 사람의 삶을 고찰하면서 ‘왜 젠더 이분법이 허물어져야 하는지’를 역설한 바 있다. 세 사람은 “그들의 몸, 심리, 욕망이 규범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불행한 삶을 살았으며, 불행하게 죽었다.

바르뱅은 선천적이지만 2차 성징기에 발현된 인터섹스(남성도 여성도 아닌 간성) 혹은 허마프로다이트(남녀 한몸)였다. 라이머는 후천적 인터섹스이자 트랜스 섹슈얼(성전환자)이었고, 브랜든은 트랜스젠더(성별 정체성과 지정 성별이 다른 상태)였다. 이들은 생물학적 성별을 나타내는 ‘섹스’, 사회학적으로 정의된 성인 ‘젠더’, 성적 욕망이나 심리 등을 의미하는 ‘섹슈얼리티’의 경계선 위에서 고통받았다. 왜 꼭 둘이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이분법적 질서에 의해 가해진 폭력에 희생됐다.

세상에는 남성과 여성뿐 아니라 제3의 성(性)도 엄연히 존재한다. 간성(間性)은 생식기나 생식샘, 성호르몬이나 염색체 구조와 같은 신체적 특징이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적 구분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을 말한다. 간성인들은 전 세계 인구의 0.05~1.7%로 추산된다. 독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인도, 파키스탄, 네팔 등은 제3의 성을 인정했다. 미국은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등 일부 주에서 신분증 성격을 지닌 운전면허증에 제3의 성인 X 성을 허용했다. 뉴욕시와 뉴저지주 등은 출생증명서에 X 성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18세 전까지는 부모가 아이의 성별을 선택할 수 있으며, 그 이후에는 본인이 스스로 변경할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남성과 여성 외에 ‘지정되지 않은 성별’인 제3의 성을 기입할 수 있도록 진정서 양식을 바꾸기로 했다고 한다. 공공기관 공문서에 지정되지 않은 성별 기입란을 만드는 것은 국내 최초다. 다양한 성소수자를 포용하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다만 인권위 관계자는 “직권으로 다른 공공기관에 권고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제3의 성에 대한 사회적 수용을 고려한 판단일 것이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니다. 모두가 어우러지는 평화로운 사회는 차별이 아닌 차이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제3의 성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이 점점 필요해지고 있다. 김은영 논설위원 key66@


김은영 논설위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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