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A380이 신공항 정책에 던지는 함의

박진국 기자 gook7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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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국 크리에이티브팀 팀장

지난해 5월 아프리카개발은행(AFDB) 취재를 위해 코드디부아르로 출장 가는 길에 현존 최대 여객기인 A380을 탔다. ‘하늘을 나는 호텔’이라는 별칭을 가진 비행기를 타고 ‘상아 해변’을 다녀온 여정은, 기대와 달리 악몽으로 남아있다.

부산→ 김포→인천→두바이→아비장으로 가는 여정은 순수 비행시간만 24시간이 넘었다. 3번의 환승을 거치면서 10시간 이상 공항에서 대기해야 했다. 돌아오는 길은 더 큰 악몽이었다. 아비장에서 두바이에 도착한 뒤 인천 행 비행기로 환승하기까지 23시간을 공항에서 허비해야 했다. 이 노선에 투입된 A380은 정원이 550~800명인데, 좌석을 최대한 채우기 위해 대기 시간을 늘린 것이다.

시장 추세 거스른 항공 산업 잇달아 낭패

A380도 ‘허브 앤드 스포크’ 실패로 단종

국토부, 글로벌 추세 역행 허브 육성 고수

실패 전 지역 거점 공항 육성 고려할 때

유쾌하지 않은 기억을 다시 떠올린 것은 A380이 2021년에 단종된다는 소식을 들어서다. 항공 공학의 총아로 불리며 2007년 취항한 이래 1200대 이상은 팔릴 것으로 예상됐던 이 대형 항공기는 234대를 끝으로 수요가 없어졌다. 항공 시장의 큰 흐름을 예측하지 못해, 취항 후 14년 만에 단종되는 불운의 대명사로 전락했다.

A380과 같은 대형기는 한꺼번에 많은 승객을 허브 공항으로 수송한 뒤 인근 서브 공항들로 환승시키는 ‘허브 앤드 스포크(Hub and Spoke)’ 전략에 최적화된 항공기다. A380의 제조사인 에어버스는 ‘허브 앤드 스포크’ 방식이 미래 항공 시장의 대세가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상황은 정반대가 됐다. 환승 없이 목적지에서 목적지로 이동하는 ‘포인트 투 포인트(Point to Point)’ 방식이 대세가 된 것이다. 불편한 환승을 기피하는 고객들이 늘고, 때맞춰 중형기의 항속 거리가 획기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중·단거리 노선에 주로 취항하는 저비용항공사(LCC)의 급속한 성장도 항공 시장의 미래를 ‘포인트 투 포인트’ 방식으로 재편하는 데 한몫했다.

A380은 애물단지가 됐다. 5010억 원에 달하는 구입 가격은 물론 좌석당 유지비, 자리 채우기 등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기체로 전락했다. 같은 이유로 A380 출현 이전 대형 항공기의 대명사로 불리던 보잉사의 B747도 잇따라 퇴역하고 있다.

글로벌 항공 시장의 추세를 읽지 못해 곤욕을 겪고 있는 곳은 에어버스사 뿐만 아니다. 국내에선 아시아나항공이 지난 2014년 약 2조 원을 들여 A380 6기를 도입한 후 유동성 위기를 겪다가 결국 주인이 바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세계 항공 시장 판도가 바뀌고 있는데도 국토부는 ‘허브 앤드 스포크’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국토부는 최근 2020년부터 2024년까지 항공정책을 결정할 ‘제3차 항공정책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발주했는데, ‘인천 공항 허브화와 지방 공항 활성화’를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인천 공항 허브화와 지방 공항 활성화는 ‘뜨거운 얼음’처럼 양립하기 어려운 형용모순 관계다. 국토부가 그동안 인천공항의 허브화를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지방 공항의 노선 신설과 슬롯 배정에 불이익을 주는 등 항공 수요를 노골적으로 억제하는 정책을 펴왔기 때문이다. ‘지방 공항 활성화’는 인천공항의 허브화에 따른 지역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수사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국토부가 항공 시장 흐름을 역행하고 있다는 조짐은 벌써 드러나고 있다. 국토부의 아낌없는 정책 지원에도 불구하고 인천공항은 2013년 환승률 18.7%를 기록한 이후 2017년에는 11.8%까지 떨어지는 등 매년 환승객 수와 환승률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정학적 측면에서도 한국이 일극 체제의 허브 공항을 만들겠다는 정책은 시대착오적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국토부는 인천공항 3단계 확장 사업을 끝내자마자 연간 여객 1억 명 처리를 목표로 4단계 확장사업을 추진 중이다. 한마디로 국토부는 인천공항 허브화에 ‘올인’하고 있다.

A380 단종 사례에서 보듯이 세계 항공 시장의 추세는 ‘포인트 투 포인트’로 넘어가고 있다. 인천공항 허브화보다 지역 거점 공항의 수용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신호다. 이런 글로벌 항공 시장 흐름 속에서 동남권 신공항 문제도 적극적으로 검토돼야 한다.

국토부가 글로벌 시장을 거슬러 정책을 계속 추진하면 결국 사달이 날 수밖에 없다. 그 뒷처리는 오롯이 국민들의 몫이 된다. gook72@busan.com


박진국 기자 gook7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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