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803> ‘나랏님’은 없다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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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계핏가루, 공붓벌레, 도낏자루, 등굣길, 마맛자국, 막냇동생, 만홧가게, 뭇국, 북엇국, 소싯적, 시곗바늘, 장맛비, 태곳적, 하굣길.’

사이시옷 규정이 바뀐 지 3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도 이런 말들이 낯설다. 왠지 우리말 같지 않아 보여서 이물감이 느껴지는 듯하다. 하지만, 원칙은 원칙. 지키는 수밖에 없다. ‘장맛비’는 ‘된장·간장맛이 나는 비냐’고 시비 거는 이도 있지만, ‘장마비’라고 써도 별수 없다. ‘위장이나 대장이 마비된다는 얘기냐’는 시비에는 또 어쩔 것인지…. 하여튼 복잡하다거나 불합리하다는 불평과는 별개로, 사이시옷 규정을 올바로 아는 것도 중요하다. 신문 제목들을 반면교사 삼아서 보자.

<‘1조 손실’ 하베스트 뒷처리에 국민연금 동원>

이 제목에선 ‘뒷처리’가 틀렸다. 합성어에서 뒷말 첫소리가 된소리(경음)·거센소리(격음)일 때는 사이시옷을 받쳐 적지 않는다. 그래서 ‘뒷꿈치, 뒷풀이, 윗층’이 아니라 ‘뒤꿈치, 뒤풀이, 위층’으로 쓰는 것.

<은퇴준비 천릿길의 첫걸음>

이 제목에 나온 ‘천릿길’도 잘못. 구조를 따져 보면 ‘천리+ㅅ+길’인데, ‘천 리’는 한 단어가 아니니 띄어 써야 하고, ‘길’ 역시 독립된 명사이니 띄어 써야 한다. 붙여 쓰지 않으니 사이시옷이 쓰일 리도 없다. 즉 ‘천릿길’은 ‘천 리 길’로 써야 한다. 국립국어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표기 방식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무슨 일이나 그 일의 시작이 중요하다는 말.

*천 리 길도 십 리: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 갈 때에는 먼 거리도 아주 가깝게 느껴진다는 말.

참고로, ‘길’은 ‘등굣길, 산책길’처럼 몇몇 명사 뒤에 붙어서 ‘과정, 도중, 중간’의 뜻을 나타낼 때는 앞말에 붙는다. 또 ‘달맞이길, 초량이바구길’처럼 고유명사일 때도 마찬가지.

<월세집서 주인 행세한 전세사기 일당 덜미>

이 제목에서 월세집은 ‘월셋집’이라야 한다. ‘합성어에서 예사소리(평음)인 뒷말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면 사이시옷을 받쳐 적는다는 원칙 때문이다. ‘나룻배, 샛강, 잿더미, 콧병’처럼….

<바람 햇님이 밀어주는 기차… 비전력놀이공원 개장>

여기서 ‘햇님’은 ‘해님’으로 써야 했다. ‘-님’이 접미사여서 ‘해님’은 파생어이기 때문이다. 파생어에는 사이시옷을 받쳐 적지 않는다. ‘사붓님, 형숫님’이라 적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

<송현정 논란, 대통령과 나랏님 사이>

여기에 나온 ‘나랏님’ 역시 파생어여서, ‘나라님’이라야 했다. jinwoni@busan.com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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