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영혼 보내기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문학이든 공연물 혹은 전시물이든 작품에서 감동을 받게 되면 거듭하여 작품을 찾아 감상하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다. 처음 작품을 만났을 때의 감동을 다시 경험하고 싶어지는 한편 작품을 감상하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예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감동을 다시 만나게 되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특히 원작이 세월의 때를 타지 않는 고전의 반열에 들어갈수록 대개 감상자는 삶의 연륜을 더하면서 작품의 감동 또한 깊어지고 넓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말을 새삼 실감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N차 관람’이라는 말도 작품이 그만큼 매력적이라는 것을 뜻한다. 뮤지컬이나 영화를 한 번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줄거리와 대사를 줄줄 욀 정도로 여러 번(N차)에 걸쳐 관람한다는 것은 작품에 깊이 매료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그러한 문화현상을 일컫는 ‘팬덤’ 혹은 ‘덕후’라는 말과 ‘N차 관람’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영화에서 특히 이런 현상이 빈번한데, ‘어벤져스: 엔드게임’ ‘보헤미안 랩소디’ 등의 흥행에는 ‘N차 관람’이 기여한 바가 자못 크다고 한다.

약간 결은 다르지만 ‘영혼 보내기’라는 것도 있다. 영혼 보내기는 극장가에서 퍼져 나가고 있는 신조어로, 극장에 가지 않고 돈을 주고 좌석을 예매하는 행위를 뜻한다. 직접 영화를 보러 가지 않기에 육신을 제외한 영혼이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본다는 뜻으로 영혼 보내기라는 말을 사용한다고 한다. 영화를 이미 봤거나 사정상 못 갈 상황인데도 돈을 들여 보지도 않을 영화 티켓을 굳이 사는 것은 그만큼 그 영화를 강력하게 지지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티켓을 살 때는 상영관 맨 앞자리나 구석자리 등 인기 없는 좌석을 구매하는 예의도 차린다.

영화 ‘걸캅스’가 개봉하면서 영혼 보내기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 중이다. 배우 라미란·이성경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디지털 성범죄를 다룬 점에 공감한다며 여성 관객들이 여성 영화 발전 차원에서 영혼 보내기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다. 이 영화는 개봉 이후 박스오피스 3위권을 꾸준히 유지하면서 손익분기점 180만 명을 향해 달리고 있다. ‘새로운 응원 문화’냐 ‘시장질서 왜곡 행위’냐. 취향에 맞는 영화에 대한 기부라는 점에서 영혼 보내기를 보다 긍정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임성원 논설위원 forest@busan.com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