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은의 스크린산책] 파리의 딜릴리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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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와 평화의 시대 ‘벨 에포크’, 파리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나

‘파리의 딜릴리’. 오드 제공 ‘파리의 딜릴리’. 오드 제공

‘미드나잇 인 파리’(감독 우디 앨런)의 주인공 ‘길’은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만나고 교류했던 1920년대를 파리의 ‘골든 에이지’라 칭하면서 그 시대를 갈망한다. 그러나 정작 1920년대 파리에 살고 있는 ‘아드리아나’는 오랜 정치적 격동기가 지난 후 평화와 번영이 있었던 ‘벨 에포크’(1890~1914,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의미)야 말로 파리가 가장 찬란하게 빛났던 때라고 말한다. 에펠탑이 처음 세워졌으며 거리에서는 우아한 복장의 숙녀들을 볼 수 있었고, 몽마르뜨르와 물랭루즈에서는 피카소, 잔 아브릴과 로트레크를 만날 수 있었던 벨 에포크는 어쩌면 많은 프랑스인들이 아직도 가장 그리워하는 시절인지 모른다.

우리 시대 대표적 프랑스 애니메이터, 미셸 오슬로는 당시의 풍경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을까? ‘파리의 딜릴리’(감독 미셸 오슬로, Dilili in Paris)는 작품마다 다양한 국가와 문화를 배경으로 소년, 소녀의 모험담을 들려주었던 그가 처음으로 파리를 택해 만든 작품이다. 각 신 별로 배경이 되는 공간은 미셸 오슬로가 4년 동안 직접 찍은 사진 위에 그림을 그려 표현했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인물들은 입체감 없이 2D로 만들어 작가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볼 수 있다. 평면적 그림이 뿜어내는 발랄함과 신비로움에서 실루엣 애니메이션 대가다운 솜씨가 느껴진다. 벨 에포크를 이끌던 명사들을 두루 만나는 재미는 ‘미드나잇 인 파리’의 그것에 버금가고, 무심하게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 현대 관광객들의 성지를 발견하는 즐거움 또한 크다. 그만큼 작품 전반에 파리를 향한 세레나데, 벨 에포크에 대한 향수가 깔려 있다.

그러나 서사를 이끌어가는 것은 의외로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다. 미셸 오슬로는 ‘아주르와 아스마르’ ‘키리쿠, 키리쿠’ 등 전작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에도 모든 종류의 차별, 혐오, 폭력에 대한 경고를 심어 놓았다. ‘파리의 딜릴리’는 풍요와 평화의 시대에 발생한 연쇄 소녀 유괴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마스터맨’으로 불리는 집단은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소녀들을 납치하고 폭력적 세뇌 교육을 강행한다. 이에 아프리카 카나키에서 온 소녀 ‘딜릴리’는 배달부 청년 ‘오렐’과 함께 오페라 가수 ‘엠마 칼베’의 도움을 받아 이 사건을 추적해나간다. 마스터맨의 범죄는 비단 성차별뿐 아니라 당시에는 거의 들춰지지 않았던 유럽의 식민주의 및 오리엔탈리즘, 인종 차별의 문제와 직결된다. 허탈하지만 우리가 앙망하는 골든 에이지는 사실 과거에는 없었고, 결국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 예쁘고 우아한 그림체, 사랑스러운 캐릭터들과 범죄 스릴러라는 장르가 비상한 균열을 일으키다가 종극에는 납득할 만한 교훈을 남기는 작품이다.


윤성은


영화평론가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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