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의 세상 속으로] 다뉴브강의 위험 신호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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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 논설위원

이상기후라고 했다. 4월엔 한여름처럼 푹푹 쪘다고 했는데, 5월 하순엔 옷 속으로 파고드는 찬바람에 몸서리를 쳤다. 날씨는 종잡을 수 없었고, 뒤죽박죽이었다. 두툼한 겨울옷을 챙겨오지 않은 걸 후회하며 먹구름이 잔뜩 내려앉은 헝가리 부다페스트 거리를 쏘다녔다. 유럽의 3대 야경이라는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유람선 투어 때도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바람은 차디찼다. 머르기트 다리에서 시작해 겔레르트 언덕 앞 자유의 다리까지 왕복하는 40분가량의 유람선 투어에서 본 다뉴브강의 물결은 조명에 반사돼 황금빛으로 일렁거렸다.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해 19세기에 지은 국회의사당의 야경이 압권이었다. 강에 두둥실 떠 있는 듯한 국회의사당은 중앙의 커다란 돔과 하늘을 찌를 기세로 도열한 첨탑이 금빛 조명을 받아 건물 전체를 금으로 마감했다는 착각까지 불러왔다. 다뉴브강에서 가장 먼저 건설돼 ‘부다’ 지역과 ‘페스트’ 지역을 한 도시로 통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세체니 다리를 지날 때 5000개의 전구가 연출하는 야경도 숨 막히는 볼거리였다.

다뉴브강 유람선의 끔찍한 비극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재난

소형 유람선에 뒤섞인 대형 크루즈선

무분별한 운항이 안전사고 키운 원인

참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정상운항’

자본의 무감각이 재난 부르는 신호

유람선 안에선 야경 명소를 소개하는 한국어 안내방송이 간간이 나와 한국인에게도 친근한 관광 코스임을 짐작하게 했다. 황금빛 조명에 황홀했지만, 낭만을 만끽하기엔 바람이 너무 거세게 불었다. 물결은 사나웠지만 그 사고만 아니었다면 다뉴브강 유람선 야경 투어는 그런 낭만적인 기억으로만 간직됐을 것이다. 구명조끼의 ‘구’자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야경 투어에서 사고의 징후를 발견하긴 어려웠다. 끔찍한 재난이 닥치기 꼭 일주일 전 다뉴브강에서 탄 유람선 야경 투어였다.

유람선 허블레아니 호의 참사로 7명만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28명이 죽거나 실종됐다. 아름답고 푸르렀던 다뉴브강의 거센 물결은 누군가의 일상을 송두리째 휩쓸고 갔다. 강풍을 동반한 폭우로 유속이 빨라진 다뉴브강에서 길이 135m의 크루즈선 바이킹 시건 호가 27m짜리 작은 유람선 허블레아니 호를 덮친 뒤였다.

사고 원인으론 크루즈 선박의 과실이 도드라진다. 추월 운항을 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교신도 않고 유람선을 두 번 들이박은 게 직접적인 사고 원인으로 추정된다. 잠깐 후진했다가 물에 빠진 피해자를 구하지 않고 그냥 내달렸다는 뺑소니 의혹도 받는다. 신속하게 구조 활동에 나섰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거란 안타까움과 분노는 어쩔 수 없이 세월호 참사의 기억과 맞닥뜨리게 한다. 회색 바다에서 속절없이 침몰하는 세월호를 지켜보며 아무도 구하지 못했다는 막막함이 7시간의 시차를 가진 다뉴브강에서도 재현됐기 때문이다. 왜 그런 비극적 장면을 하염없이 바라봐야만 하는지, 구조의 소식은 그때도 지금도 들려오지 않는지…. 세월호가 침몰한 맹골수도보다 허블레아니 호가 수장된 다뉴브강 머르기트 다리 밑 물살이 더 셌다고 하니 야속함은 더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은 많이 달라졌지만,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다. 차마 옮기기에 민망한 가시 돋친 말로 애먼 죽음을 조롱하는 댓글은 이전보다 줄었다고 해도 여전했다. “골든타임이 기껏해야 3분”이란 냉소로 재난을 정쟁에 끌어들이려는 정치인의 막말도 여전히 세월호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음을 반증한다. 실낱같은 희망 고문으로 살아 있기만을 염원하며 구조 작업을 벌이는 와중에 사망 보험금 1억 운운하는 언론도 마찬가지다.

지금대로라면 재난은 되풀이된다. 구명조끼를 입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겠지만, 있었다 치더라도 7초 만의 침몰에는 무용지물이다. 그저 안전불감증으로 싸잡아 비난하는 것만으론 위험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개인에게 위험의 회피를 요구하기 전에 위험의 생산자에게 먼저 책임을 물어야 한다. 다뉴브강의 비극도 작은 유람선이 다니던 항로에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대형 크루즈선이 뒤섞여 운항한 탓이 커 보인다. 좁은 도로에 자전거와 컨테이너 트럭이 함께 달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여전히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수백 대의 유람선이 매일 밤 정상운항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피크타임인 오후 9시엔 티켓을 구하기조차 어렵다고도 한다. 자본의 논리에 충실한 ‘정상운항’이라는 무감각이야말로 다가올 또 다른 재난의 위험 신호다.

안타까운 죽음을 돈으로 환산하는 그 지독한 셈법과 망연자실한 실종자 가족을 강변에 두고도 화려한 야경 투어를 평상시처럼 이어가는 무감각이 이번 참사의 진범이다. 그런 세상에서 내가 억울한 희생자가 된다고 해도 하등 이상할 것 없다. 나와 달랐던 건 그들이 우연히 그 시간과 장소에 있었다는 이유로 영문도 모른 채 재난을 맞아야 했다는 것뿐이다. 내가 살아 돌아와 이 칼럼을 쓰는 것도 운이 좋았을 뿐이다. 남의 일이 아니다. ttong@busan.com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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