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와 공존하는 부산을 찍다

이준영 선임기자 gap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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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춘만 작가가 부산의 산업시설을 카메라에 담은 ‘IK184775_모라동’. 사진=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조춘만 작가가 부산의 산업시설을 카메라에 담은 ‘IK184775_모라동’. 사진=고은사진미술관 제공

부산의 산업 시설을 사진작가의 시선으로 들여다보고 해부했다. 이렇게 촬영한 작품은 지역의 생산·물류 기지를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오게 한다.

용접공 출신 사진가 조춘만

8월 7일까지 ‘인더스트리 부산’

고은사진미술관서 전시회

1년간 지역 산업시설 현장촬영

작업장·항만 등 44곳 앵글에 담아

고은사진미술관(부산 해운대구 우동)에서 오는 8월 7일까지 열리는 ‘조춘만_인더스트리 부산’은 한 지역의 공장과 유통 시스템이 유기체처럼 돌아가고 있음을 사진으로 보여준다. 미술관 측이 ‘부산 프로젝트 2019’로 기획한 이번 전시에서는 부산 내 44곳의 작업장과 항만, 공장 건물 등이 피사체로 관객을 맞는다.

조춘만 작가는 배관용접공 출신이다. 10대부터 울산에서 중공업 노동자로 잔뼈가 굵었다. 그렇게 흘린 땀방울의 시간이 그를 ‘기계 사진가’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조 작가는 그동안 울산의 거대한 공장 시스템을 앵글에 담아왔다. 그의 눈에는 울산의 조선소, 자동차 공장, 화학 공장이 단순한 기계 덩어리로 보이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고, 고함을 지르고, 에너지를 발산하는 자이언트 로봇이나 다름 없었다. 어쩌면 우리 앞에 선 거인일지도 모른다.

그처럼 빈틈 없이 돌아가는 기계가 ‘미(美)’와 ‘숭고’라는 낯선 느낌으로 다가설 때가 있다. 조 작가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셔터를 눌렀다.

고은사진미술관 측은 그에게 이제 부산에서 그러한 예술 행위를 해주기를 의뢰했다. 2013년부터 간헐적으로 부산 곳곳을 촬영하던 작가는 미술관과 손을 잡은 후 2018년 연중 내내 집중적으로 부산의 산업시설을 찾았다.

‘IK183122_봉래동’. ‘IK183122_봉래동’.

조 작가는 울산에선 숲을 바라봤다면, 부산에서는 숲과 나무를 동시에 취하는 자세를 가졌다. 그간의 작업 방식에서 탈피해 공장과 항만 내부로 들어가면서 다른 도시와 구분되는 부산의 산업적 특징을 포착해냈다. 스펙터클보다 디테일에 초점을 맞췄다고 볼 수 있다. 중공업 도시인 울산과 경공업 중심인 부산의 차이 때문이었다. 울산의 공장이 앙코르와트와 같은 건축 양식이라면, 부산의 공장은 각 건물과 정원이 어우러진 고택(古宅) 양식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그는 부산의 대표적 산업인 고무와 신발 관련 산업 현장을 찾았다. 동일고무벨트(DRB)는 한국에서 가장 큰 고무벨트 생산 업체이다. 국숫발을 연상시키는 고무벨트가 줄줄이 걸려있는 장면에서부터 벨트가 프레스에서 열과 압력을 받으며 숙성되는 모양이 고스란히 사진에 담겼다. 왕성하게 생산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의 열과 소음, 냄새가 그대로 전달되는 듯하다.

부산을 대표하는 단조기업 ㈜태웅도 빠질 수 없다. 강철을 만드는 치열함과 강도, 열기가 용접공 출신 사진작가의 눈에서 더욱 실감 나게 재현된다. 부두 야적장에 쌓여있는 목재는 그 위용에도 불구하고 쓸쓸하다. 한때 세계 최대의 합판 산업을 일으켰던 화려한 과거를 생각하면 그렇다는 뜻이다. 조 작가가 부산 합판 산업의 역사를 알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조 작가는 각 작품에 구체적인 산업시설 이름을 명기하지 않고, 단지 촬영 날짜와 파일 번호, 동(洞) 별 위치만 달았다. 어떠한 사전 지식이나 선입관 없이 산업시설 모습을 느낌 그대로 감상하는 장치로 보인다. ▶조춘만_인더스트리 부산=8월 7일까지 고은사진미술관 051-746-0055.

이준영 선임기자 gapi@busan.com


이준영 선임기자 gap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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