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졸자 많은 부산, 중소기업은 청년들 ‘스펙’이 부담스럽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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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유독 일자리 미스매치 문제가 심각하게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광역시 가운데 서울 다음으로 많은 대학을 보유한 부산은 그에 비례해 대졸자도 많은 도시다. 지난해 부산의 대졸자는 4만 2882명으로 전국 평균 2만 9195명보다 45%나 많다.

부산 ‘일자리 미스매치’ 유독 심각

대졸 청년-기업, 급여 수준 상충

고학력자 눈높이 맞는 기업 적어

부산시 자체조사에 따르면 지역 대졸자들은 초임으로 200만 원 이상을 선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나, 지역기업들은 150만~200만 원을 제시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대졸 청년이 많은 도시에 그들이 원하는 보상 수준을 맞춰 줄 수 있는 기업이 많지 않다는 게 문제다.

부산의 주력 산업이 수십 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조선기자재, 자동차부품에 머무르고 있는 것도 한몫한다. 이 산업군은 일부 연구인력을 제외하면 대부분 전문대졸 이하의 인재를 수급하려고 한다.

실제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부산지역 중소기업의 미충원인원을 조사한 결과 전체 미충원인력의 83%가 전문대졸 이하의 인재였다. 중소기업들은 청년들의 ‘스펙’이 부담스럽다.

그러나 고학력, 고스펙의 청년들에겐 죄가 없다. 청년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기업을 강요하는 시도 자체가 문제다. 이를 단순히 급여 수준의 문제로 치환해 버리는 건 온당한 일이 아니다. 지난해 청년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을 원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복지·근로환경 열악(31.7%)을 답한 이가 가장 많았고, 개인의 발전가능성이 없음(21.7%)이 두 번째였다. 낮은 급여수준(21.3%)은 3위에 그쳤다.

강서구 미음산단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박 모(33) 씨는 “생산현장에서 기르는 강아지에게 사료를 주거나 제초 작업에 동원되는 등 기대했던 업무와는 완전히 다른 일을 시켜 자괴감이 컸다”며 “2시간 넘게 걸리는 통근시간을 고려하면 여가 생활은 고사하고 나만의 시간이 아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털어놨다. 박 씨는 결국 연봉이 1000만 원 가까이 차이 나지만 도심인 센텀시티 근처에 있는 중소업체로 이직했다.

부산시가 운영한 진로상담센터에서 근무했던 한 상담 전문가는 “진로상담을 신청하는 대학생의 90% 이상이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을 희망하고 있다”며 “지금 청년들은 IMF를 겪은 부모세대로부터 안정된 직장이 최고라는 인식을 교육받았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며 어릴 때부터 여가의 중요성을 직접 체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직업의 안정성과 여가의 중요성을 체득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도전정신과 근면성만 강요하며 중소기업으로 떠밀어 봤자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지역의 전통 제조업이 오랜 침체기에 빠져 있는 동안 대체할 만한 분야를 키워 내지 못한 것도 일자리 미스매치의 원인으로 꼽힌다. IT, 금융, 콘텐츠, 문화 분야의 지역 인재들은 수도권으로 빠져나갔고, 해당 분야의 산업은 경쟁력을 잃었다. 경쟁력을 잃은 기업들은 시장에서 외면당한다. 지역 인재들은 ‘먹고살기 위해’ 부산을 떠난다. 악순환은 되풀이되고 있다.

안준영 기자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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