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위기’ 흔들리는 이란-유럽 핵 합의

정달식 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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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현지 시간)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된 영국 국적 유조선 ‘스테나 임페로’. 이 유조선은 이날 정오 아랍에미리트(UAE) 동부 푸자이라항을 떠나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 21일 걸프 해역 안쪽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알주바일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AP연합뉴스 지난 19일(현지 시간)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된 영국 국적 유조선 ‘스테나 임페로’. 이 유조선은 이날 정오 아랍에미리트(UAE) 동부 푸자이라항을 떠나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 21일 걸프 해역 안쪽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알주바일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AP연합뉴스

유럽 핵 합의 서명국들이 일제히 이란의 영국 유조선 억류를 비판하고 나섰다. 이에 미국이 일방적으로 탈퇴한 핵 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놓고 미국과 이란의 긴장이 첨예해지는 상황에서 ‘전선’이 유럽으로까지 넓어지는 모양새다.

유럽 측은 19일(현지 시간)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 혁명수비대가 억류한 영국 유조선 스테나 임페로 호와 관련, 즉시 석방하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이란, 英 유조선 억류 긴장 고조

美·이란 충돌, 유럽으로 확전

英, 외교·경제 제재 방안 곧 발표

EU, 이란 경제 제재 복원 가능

이란 “법적 절차 따라 처분할 것”

이에 대해 이란은 이 유조선이 선박자동식별장치(AIS) 신호를 끄고 정해진 해로를 이용하지 않은 데다 이란 어선과 충돌하고서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적 절차에 따라 처분하겠다면서 유럽 측의 요구를 완강히 거부했다.

당사국인 영국은 이란에 대한 제재까지 검토하는 등 대책 마련에 긴급히 착수했다. 영국 정부는 19일과 20일 이틀 연속으로 내각의 긴급 안보 관계 장관 회의인 ‘코브라(COBRA)’를 소집해 대책을 논의했다. 20일에는 주영 이란 대사대리를 불러 자국 유조선의 억류를 엄중히 항의하고 즉시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

제러미 헌트 외무장관은 유조선 나포 직후인 19일 스카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이 상황이 신속히 해결되지 않으면 심각한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게 우리의 명확한 입장이다”라면서 “군사적 옵션은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외교적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20일에는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강하게 항의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영국 정부가 이란 정권을 겨냥한 제재 방안을 마련 중이며, 헌트 장관이 자산 동결을 포함한 외교·경제 조치를 21일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또 이란 핵 합의 체결에 따라 2016년 해제된 유럽연합(EU)과 유엔의 대(對)이란 제재를 복원하는 방안도 추진할 수 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이와 관련, 영국 정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유엔 사무총장에 서한을 보내 이란 당국의 유조선 나포를 ‘불법적 간섭’이라고 주장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정황을 볼 때 이란의 이번 영국 유조선 억류가 지난 4일 영국령 지브롤터 당국이 시리아로 원유를 판매한다며 이란 유조선을 나포한 것과 무관하지 않은 만큼 양국 유조선의 ‘맞교환’이 이뤄질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프랑스 외무부는 20일 낸 성명에서 “이란의 이런 행동은 걸프 지역에서 필요한 긴장 완화를 가로막는다”고 강조했다. 독일 외무부도 “우리는 이란에 즉각 선박들을 풀어 주라고 요구한다”고 밝혔으며, 폴란드 외무부 역시 억류한 선박을 지체 없이 풀어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방의 압박에도 이란은 정해진 법적 절차대로 일을 처리하겠다고 일축했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20일 트위터에 “페르시아만(걸프 해역)에서 이란의 행동은 국제적 해양 법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영국은 더는 미국의 경제 테러리즘(제재)의 장신구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자리프 장관은 또 트위터에서 지난 4일 영국령 지브롤터 당국이 자국 유조선 그레이스 1호를 억류한 것을 가리켜 “해적 행위”라고도 비난했다.

한편 이란 당국은 억류한 스테나 임페로 호의 선원 23명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다고 밝혔다. 억류 당시 이 배에는 인도인 18명을 비롯해 러시아(3명), 필리핀(1명), 라트비아(1명) 국적의 선원이 탑승했다

유럽과 이란의 ‘유조선 충돌’은 위기에 처한 핵 합의의 존폐에도 초대형 악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5월 미국이 일방적으로 핵 합의를 탈퇴한 뒤 핵 합의에 서명한 유럽(영·프·독)과 EU는 1년여간 핵 합의를 유지하는 방안을 이란과 협의했다. 그러나 이란은 유럽 측이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핵 합의 이행에 미온적이라면서 5월 8일부터 60일 단위로 핵 합의 이행 범위를 축소하고 있다. 핵 합의 존속을 위해 양측이 적극적으로 협력해도 모자랄 판에 유조선 억류로 오히려 긴장이 고조하면서 핵 합의의 생존이 더 불안해진 것이다. 정달식 기자 dosol@busan.com·일부연합뉴스


정달식 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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