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새로운 한반도’의 걸림돌, 아베 정권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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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우리가 만들고 싶은 나라,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다시 다짐합니다.”

지난주 광복절 경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문장이다. 그리고 이러한 나라를 문 대통령은 ‘새로운 한반도’라고 표현했다. 한·일 양국의 갈등이 고조되는 시점에서 맞는 광복절 대통령 경축사에서 일본에 대한 날 선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었지만 위엄 있게 ‘협력’하자는 말로 대신했다.

미국, 전후 ‘샌프란시스코 체제’ 주도

미군 주둔 대가로 일본 죄과 눈감아

북핵 급부상 후 신냉전 구도 이어져

북·미 관계 개선 땐 일본 입지 타격

보수정권, 국제 질서 변화에 어깃장

‘새로운 한반도’ 훼방꾼들 극복 숙제

그런데 왜 최근 일본은 한반도를 흔들려 하고 갈등을 조장하는 것일까? 일본 자민당 보수 정권의 오래된 나쁜 버릇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아베 신조 총리의 집안 내력을 언급하면서 아베의 의도를 과거 군국주의 침략 세력들과 동일시하는 듯한 언론 보도를 자주 접하게 된다. 아베 일가가 메이지유신(1868)과 한국 침략의 주요 세력인 ‘조슈번’(야마구치현)의 후예라는 지적, 아소 다로 부총리가 조슈 인근의 고쿠라 지역 탄광 집안의 자손이라는 것과 이러한 구세력의 중심 ‘일본회의’ 회원이라는 등의 지적은 중요하다.

다만 100년 전 일본 군국주의 세력과 지금의 일본 보수 정권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일본 보수 정권이 지금과 같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무리수를 두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67년간 지속돼 온 ‘태평양 질서’가 바뀌려 하고 있고 그렇게 될 경우 일본의 입지는 매우 좁아지기 때문이다.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은 1945년 8월에 패전으로 끝났지만, 이에 대한 전후 처리는 6년이 지난 1951년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49개국이 모여 진행됐다. 미국 주도로 열린 이 회의 결과 평화헌법을 만든다는 조건으로 일본의 모든 죄과를 용서하였고, 대신에 같은 날 미·일 간 안보조약을 체결해 미군이 일본에 영구 주둔하는 데 합의했다. 소련, 중국, 필리핀 등 많은 참여국들이 반대 의사로 성토했지만 당시 미국의 외교력은 강력했다.

미국의 의도는 냉전 상대 세력인 소련의 아시아 영향력 확산을 막겠다는 것이 주요 전략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일본이라는 전진기지는 지정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했고, 그 전방에 위치한 한국은 최전방 부대 역할을 담당해야 했던 것이다. 일본 후방으로는 괌 공군기지, 하와이 해군기지와 미국 본토의 본 기지 그리고 호주와 뉴질랜드의 예비군 형태의 태평양 방어 개념이 세워졌다. 그러기 때문에 일본에 미군 주둔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몇몇 잘못된 행태들은 눈감아주는 구조였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독도 문제와 러시아 북방 4개 섬, 중국 근해의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열도) 문제를 일으키는 일본 뒤에는 ‘샌프란시스코 체제’라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1990년을 전후해 소련은 사라졌고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유럽에서는 냉전이 종식되었다. 아시아에서도 한국이 러시아(1990년), 중국(1992년)과 수교했고, 북한이 1990년을 전후해서 남북고위급회담, 일본과의 수교 회담을 8차례나 진행했다. 그런데 1989년 북한의 핵 문제가 급부상하면서 한반도는 제1차 핵 위기(1993년)를 맞이하게 된다. 북한 핵 문제로 인해 한반도는 오늘날까지 30년 동안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신냉전 구조에서 늘 ‘흔들리는 상황’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가 진행되고 북·미가 관계 개선에 돌입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일본 보수 정권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이런 변화이다. 한반도 문제가 풀리게 되면 일본은 더 이상 과거 태평양전쟁의 과오를 숨길 공간이 없어지고 항상 머리를 숙여야만 하는 상황이 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보수 정권이 세계 질서의 변화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아베 정권의 무역 보복 행태가 이러한 변화를 막아내는 데는 역부족일 것이다. 아마도 그들이 원하는 것은 변화를 최대한 늦추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제 동아시아와 태평양 국가들은 30년 동안 지속된 냉전을 벗어날 기회를 가지게 됐다. 세계 질서는 이념의 대립이 아니라 무역으로 대립하는 즉, 미·중 양대 플랫폼(G2)에 관계하고, 협력하고, 견제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큰 흐름 속에서 각국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속도의 강약을 조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한반도’는 우리에게 평화와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한반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를 가로막고 훼방하려는 국가에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그 방법은 엄중하지만 평화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한반도’가 그들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는 점을 일깨워줘야 할 것이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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