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누르기가 두렵다” 여성 가스 점검원들 울산시의회 옥상 농성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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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전 울산시의회 옥상에서 고공 농성을 하던 경동도시가스 안전점검원(주황색 모자)들이 경찰 관계자들에게 연행되고 있다. 이들은 도시가스 방문 점검 시 성폭력을 방지할 대책이 필요하다며 17일 오후 고공 농성에 들어갔다. 연합뉴스 18일 오전 울산시의회 옥상에서 고공 농성을 하던 경동도시가스 안전점검원(주황색 모자)들이 경찰 관계자들에게 연행되고 있다. 이들은 도시가스 방문 점검 시 성폭력을 방지할 대책이 필요하다며 17일 오후 고공 농성에 들어갔다. 연합뉴스


“이제 벨 누르기가 두렵습니다. 성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된 여성 방문 노동자들을 지켜주십시오.”

울산 경동도시가스 소속 여성 점검원 3명이 울산시의회 옥상에 올라가 농성을 벌이다 16시간여 만에 경찰에 강제 진압됐다.

울산 경동도시가스 점검원 3명

“성범죄 무방비, 대책 세워라”

2인 1조 점검제 도입 등 요구

16시간 농성, 경찰에 강제진압

민노총, 市·경찰 규탄 항의집회

울산경찰청은 18일 오전 10시께 울산시의회 6층 옥상 엘리베이터 기계실 위에서 농성하던 여성 노동자 3명을 30여 분 만에 진압, 울산 남부경찰서로 연행해 조사하고 있다. 농성자들이 남부서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공공운수노조 울산본부 조합원 수십 명이 막아서 경찰과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들 노동자는 모두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울산지역본부 경동도시가스서비스센터분회 소속 조합원들로 전날 오후 6시 30분께 “가스 안전점검원 성폭력 피해를 인정하고 안전대책을 마련하라”며 기습 농성을 벌였다.

울산과 경남 양산에 도시가스를 공급하는 경동도시가스에는 현재 70여 명의 점검원이 근무하고 있다. 대부분 여성 근로자로 각종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며 사 측을 상대로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일례로 이 회사 점검원 A(여) 씨는 지난 4월 5일 안전점검을 나갔다가 거주자인 한 남성에게 감금당해 추행 위기까지 몰렸다가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정신과 상담에서 ‘장기 치료가 필요하다’는 소견이 나왔지만, 회사는 2주간 공상휴가를 준 뒤 A 씨를 업무에 복귀시켰다. 간신히 업무를 이어가던 A 씨는 5월 15일 또 팬티만 입고 문을 열어준 남성과 맞닥뜨리는 봉변을 당했다. A 씨는 지난 6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인권침해 증언대회에 참가해 “(일련의 사건들로) 트라우마를 겪다 극단적 선택까지 시도했다. 직장 동료가 저를 발견해 겨우 목숨을 건지고 심리 치료를 받고 있지만, 충격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성 점검원들 사이에서는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는 등 피해 사례가 잇따랐다.

민주노총 울산본부가 18일 오후 울산시청 앞에서 경동도시가스 여성 점검원들의 옥상 농성을 강제 진압한 경찰과 울산시를 상대로 규탄 집회를 열고 있다. 민주노총 울산본부가 18일 오후 울산시청 앞에서 경동도시가스 여성 점검원들의 옥상 농성을 강제 진압한 경찰과 울산시를 상대로 규탄 집회를 열고 있다.

노조는 이에 지난 5월 20일부터 121일 동안 울산시청 앞에서 성폭력 방지 대책을 요구해 왔지만, 울산시와 경동도시가스 측이 문제 해결에 의지를 보이지 않자 고공농성을 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는 현재 사 측을 상대로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2인 1조 점검 체계와 △점검 건수 할당제 폐지 △감정노동자 보호 메뉴얼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경동도시가스 측은 “2인 1조 근무가 근본 대책이 될 수 없고 모든 고객을 잠재적 범죄자로 가정해 업무체계를 재편하는 것도 불합리하다”며 “탄력적 2인 1조 근무나 안전점검원에게 성범죄자나 특별관리세대 고지, 남자 점검원 추가 채용 등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면서 최대한 빨리 제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울산본부는 이날 오후 울산시청에서 항의 집회를 열고 “절박한 심정으로 시의회 옥상에 오른 노동자를 물리력으로 강제진압한 경찰과 울산시를 규탄한다”며 “사태 장기화의 책임은 사 측에 있으며, 경동도시가스와 울산시가 끝장 교섭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권승혁 기자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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