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탈레반의 시간

이춘우 기자 bomb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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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은 ‘제국의 무덤’이었다. 19세기 영국, 20세기 소비에트연방(소련)이 무덤의 주인이었다. 세 차례에 걸친 영국의 침공과 소련과의 10년 전쟁, 저항의 중심에는 종족 군벌과 무장 반군이 있었다. 이제 미국이 탈레반과의 평화협상을 통해 아프간 전쟁에서 발을 뺄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이 아프간 전쟁에서 보낸 18년은 베트남 전쟁 개입 9년을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냉전이 한창이던 1979년,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하자 무자헤딘(지하드 전사)이 전면에 부상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파키스탄 정보부(ISI)의 지원을 받은 무자헤딘은 소련과의 10년 대리전을 승리로 마감했다. 소련의 철수 이후 내전 과정에서 또 다른 조직인 탈레반이 등장했다. 1994년, 샤리아법이 지배하는 국가를 꿈꾸던 34살의 물라 모하마드 오마르는 50명의 지지자로 시작해, 불과 수 개월 만에 1만 5000명으로 조직을 확대했다. 파키스탄의 이슬람 신학교를 다녔던 오마르는 소련 침공 당시 무자헤딘의 일원이었다. 오마르의 탈레반은 아프간과 파키스탄의 마드라사(이슬람신학교) 학생들(탈레반)이었다. 조직 이름 탈레반도 여기서 나왔다. 탈레반 구성원 대다수는 아프간 최대 종족인 파슈툰족이었다. 탈레반은 무자헤딘처럼 CIA와 ISI의 지원을 등에 업고 급성장해 2년 만에 카불을 점령했다. 1996년, 탈레반 정권 ‘아프간 이슬람에미리트’ 국가가 탄생했다. 탈레반 정권은 2001년 9.11 테러를 계기로, 미국의 지원을 받은 반탈레반 무장조직 북부동맹에 의해 6년 만에 무너졌다. 북부동맹은 타지크족을 비롯해 우즈베크, 하자라족이 주축이었다. 현 아프간 정권의 중심축은 북부동맹 출신들이다.

아프간 탈레반은 파키스탄 탈레반과는 달리 미국이나 국제사회로부터 테러 조직으로 지정된 적이 없다. 무자헤딘이 동서냉전의 서방 지렛대였다면, 탈레반은 알카에다와 IS 등 테러 조직을 저지하는 지렛대였다. 3년 이상 계속된 미국과 탈레반의 평화협상이 테러로 인한 미군 사망이라는 변수로 주춤한 상황이지만, 로드맵 자체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다. 탈레반은 18년 동안 꾸준히 세력을 확장해 14개 지역을 장악하고, 263개 지역을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다. 국토의 70%가 탈레반의 영향권에 있다. 탈레반은 18년 전쟁 동안 “그들에겐 첨단무기가 있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있다”고 공언했다. 18년 전 사라진 아프간 이슬람에미리트의 부활 여부는 28일 아프간 대선 후 윤곽이 드러날 것 같다. 이춘우 편집위원 bombi@


이춘우 기자 bomb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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