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주의 맛있는 인터뷰] 세계적인 ‘공간 디자이너’ 이코 밀리오레 동서대 석좌교수

윤현주 기자 hohoy@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미래 도시 디자인할 때는, 분리보다 공유에 초점 맞춰야”

이코 밀리오레 동서대 석좌교수가 동서대 센텀캠퍼스 ‘아트소향’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에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그의 디자인은 창의적 방법으로 빛과 공간의 조화를 표현해 왔다. 정종회 기자 jjh@ 이코 밀리오레 동서대 석좌교수가 동서대 센텀캠퍼스 ‘아트소향’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에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그의 디자인은 창의적 방법으로 빛과 공간의 조화를 표현해 왔다. 정종회 기자 jjh@

이코 밀리오레(63)는 이탈리아 밀라노에 본사를 둔 글로벌 건축 디자인 회사 ‘Migliore+Servetto Architects’(M+S 건축사무소)의 공동대표이다. 그는 20년 이상 전 세계를 무대로 기관과 기업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규모의 건축설계와 공간기획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박물관, 도시 디자인, 소매점, 설치물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에서 그의 디자인은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 창의적인 방법으로 빛과 공간의 조화를 표현해 왔다.

그는 최근 동서대 디자인대학 석좌교수에 임용됐다. 동서대는 디자인 특성화 대학으로서 디자인 교육의 글로벌·전문화를 위해 권영걸 전 서울대 미술대학 교수와 함께 그를 석좌교수로 초빙한 것. 동서대 센텀캠퍼스 아트소향에서 이코 교수를 만나 그의 작품 세계와 바람직한 부산의 도시 디자인 방향 등에 대해 들어봤다. 아트소향에서는 오는 28일까지 M+S 건축사무소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공간 디자인이란 단순히 인테리어 아닌

인간 행동·생각과 관련된 디자인 뜻해

오늘날 핵심 되는 부분은 도시 디자인

아내와 함께 ‘M+S 건축사무소’ 운영

박물관·상업·도시 디자인이 활동 ‘축’

현재 아트소향서 ‘라이트모르핑’ 개인전

빛·구조·공간 사이 상관관계 보여 줘

디자인에서 빛은 첫 번째 고려할 재료

드로잉은 의사소통 위한 건축적 도구

부산은 자연과 도시적인 면 잘 융합돼

고층빌딩·아파트에 포커스 두면 안 좋아

동해남부선 폐선 구간 재개발 사업

핵심은 바다·산·달·새 등 아우르는 것

-공간 디자인이란 개념이 한국에선 다소 생소한데, 어떤 것인가?

“공간 디자인(space design)이란 단순히 인테리어 디자인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부(인테리어)와 관련된 디자인, 즉 인간의 행동과 생각에 관련된 디자인을 말한다. 따라서 건물의 내부뿐만 아니라 인간이 생활하는 모든 공간, 나아가 큰 의미에선 도시 전체를 디자인하는 것도 공간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또 물질적인 것 외에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기후, 소리, 시각적 이미지 등도 공간 디자인 영역에 속한다. 이 중 오늘날 핵심이 되는 부분이 도시 디자인이다.”

이코와 그의 부인 마라 세르베토. 이코와 그의 부인 마라 세르베토.

-M+S 건축사무소의 활동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어 요약하기가 쉽지 않다(웃음). 우리 스튜디오에서 하는 가장 중요한 작업은 3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박물관 디자인이고 두 번째는 상업 디자인이며 세 번째가 도시 디자인이다. 젊은 세대에 대한 교육과 나의 개인적 예술 활동도 한 축이다.”

이코 교수는 부인 마라 세르베토와 공동으로 M+S 건축사무소를 설립해 운영 중에 있다. ‘M+S’는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당시 토리노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담당했으며, 폴란드 바르샤바의 쇼팽 박물관과 토리노의 신 이집트 박물관 등 다양한 박물관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M+S’는 황금콤파스상 3회, 독일 디자인 어워드 2회, 레드닷디자인 어워드 11회 등 화려한 국제 경연 대회의 수상 이력을 자랑한다.

-현재 아트소향에서 전시 중인 개인전 제목이 ‘라이트모르핑(Lightmorphing)인데, 어떤 개념인가?

“이번 전시는 빛, 구조 그리고 공간 사이의 상관관계에 천착하는 우리 건축사무소의 독특한 디자인 접근법을 보여주고자 한다. 라이트모르핑은 ‘M+S’에서 수년 간 연구해 온 개념으로, 자연광과 인공광이 상호작용하면서 빛을 통해 공간의 형태를 구성하고, 이를 융합·확장시키는 방법으로 ‘장소 특정적’이고 역동적인 설치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디자인에서 빛이 중요하다는 뜻인가?

“그렇다. 빛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어떤 작품을 디자인할 때, 처음부터 빛을 생각하면서 진행해야 한다. 건축을 하는 데 있어 빛은 첫 번째로 생각해야 할 재료이다. 빛은 그 자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질 수 있는 물질로 기능한다. 한국사람들은 공간을 밝히기 위해 빛을 사용하는데, 사실 건축에서 빛은 공간을 지워 나가는 것이다.”

이코 교수는 빛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최근 펴낸 자신의 저서 〈드로링(Drawings)-스케치, 경관, 지도〉의 한 장면을 펼쳤다. 그는 프랑스 화가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신생아’라는 작품을 보여주며 “그가 사용한 빛에 매료돼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아찔한 ‘스탕달 신드롬’을 경험했다”고 고백했다.

‘2017 Coats! Max Mara 서울 전시회‘ 스케치. ‘2017 Coats! Max Mara 서울 전시회‘ 스케치.

-그럼 모르핑이란 뭔가?

“서서히 변화시키는 것이다. 사람의 얼굴을 예로 들면, 사람은 나이가 들면 얼굴의 윤곽이 서서히 변한다. 그러나 사람 그 자체의 정체성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듯이 도시나 건축물도 한 번 지어 놓고 끝낼 게 아니라 정체성을 지키면서 서서히 변화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다.”

-당신이 디자인 작업에서 중시하는 드로잉이란 뭔가?

“나에게 있어 드로잉 연습은 의사소통을 위한 건축적 도구이다. 21세기에 들어와 드로잉이란 더 이상 시각 문화의 단순한 부속물이나 부가물이 아니라 옛것과 새것, 세계적인 것과 국지적인 것, 역사의 힘과 상상력 간의, 그리고 개인의 창의력과 비판적인 통찰력 사이에 살아 숨쉬는 중요한 대화의 장이다. 드로잉은 스케치(sketches), 경관(sceneries), 지도(maps) 세 가지로 나뉜다. 스케치는 메모와 함께 아이디어를 형상화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는 그림을 말하고 경관은 디자인 된 공간 안에서 사람들의 동선, 배경음악 등 ‘일어나는 일’에 관한 그림이며, 지도는 스케치의 시각적 이미지와 경관 속에서의 사람들의 행동과 일어날 수 있는 일 등을 모두 연결하여 정리한 것을 말한다.”

-부산 얘기를 좀 해 보자. 부산의 첫인상은 어땠나?

“최근 2~3년 사이에 부산을 15번가량이나 방문했다. 부산은 매력적인 도시이다. 자연과 도시적인 면이 잘 융합돼 있다. 바다와 산, 바람, 안개 등이 다이나믹하게 어우러져 있는 것 같다.”

-부산의 도시 디자인에 대해 충고한다면?

“한 도시가 고층 빌딩이나 아파트를 짓는 데 포커스를 두면 안 좋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산을 좋아하게 된 것은 고층 빌딩이 아니라 공간과 자연의 조화로움 때문이었다. 한국은 땅이 좁아 어쩔 수 없이 고층화해야 하는 측면이 없지 않지만, 차라리 그럴 바엔 도시 전체를 그런 스타일로 디자인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미래 도시를 디자인하는 데는 분리보다 공유가 제일 중요하다. 부산에서의 관심 분야는 광장이나 길 등 미래에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토리노 Intesa Sanpaolo 빌딩에 설치된 작품. 토리노 Intesa Sanpaolo 빌딩에 설치된 작품.

-바람직한 부산의 산복도로 도시재생 방향은?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하나는 경제적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지역이 원래 가지고 있는 성질(그는 이를 지니어스 로사이라고 말했다)이다. 예컨대 영국 템즈강 주변을 재개발할 때, 지역 작가들에게 공간을 내 주어 경제적 자립을 도모하도록 하면서 원래의 전통을 지키도록 했다. 그런 식의 접근이 고층 빌딩을 짓는 것보다 낫다.”

-동해남부선 폐선 구간을 테마파크로 재개발하는 ‘블루라인 파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사업의 핵심 방향은 뭔가?

“우리 스튜디오에서 프로젝트 자문을 의뢰받아 제안서를 냈는데, 그 뒤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제안의 골자는 구역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연결하는 것이다. 뚝 떨어져나간 공간으로서의 공원이 아니라 바다와 산, 달, 새 등을 아우를 수 있도록 연결시키는 데 초점을 뒀다. 진정한 스마트시티는 테크놀로지가 아니라 인텔리전스여야 한다.”

-부산은 2030 세계박람회 유치를 추진 중이다. 공간 디자인 측면에서 성공적인 엑스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건 엑스포 이후 무엇이 유산(레거시)으로 남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큰 행사를 준비할 때 랜드마크를 생각하는데, 이런 건 행사가 끝나고 나면 가스가 떨어진 차나 마찬가지다. 새 건물을 짓기보다 엑스포가 도시 곳곳에 연계돼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생들을 위해 훌륭한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조건을 말한다면?

“어려운 질문이다. 디자인은 가르치기가 매우 어렵다. 디자인은 결국 창의성과 관련이 있다. 그런데 창의성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 터득하는 것이다. 예컨대 창의성은 잼과 같은 것이다. 빵이 있다면 잼을 발라 먹을 수 있지만 빵이 없다면 잼은 아무것도 아니다. 교수는 빵을 굽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지만 잼은 학생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어쨌든 기본기(빵)가 탄탄해야 한다.”

이코 교수와의 인터뷰는 흥미진진하고 유쾌했다. 그는 답변에 막힘이 없었고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활력이 넘쳤다. 편안하고 여유 있는 미소는 그의 화려한 이력을 미농지처럼 은은하게 숨길 수 있을 뿐이었다.

윤현주 선임기자 hohoy@busan.com


“아이스하키를 통해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이코 밀리오레 동서대 석좌교수는 원래 아이스하키 선수였다. 그는 20~29살까지 아마와 프로 선수로 맹활약했다. 국가대표 선수로도 뛰었다. 학업과 운동을 병행한 그는 건축가로서의 꿈을 펼치기 위해 운동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이코 교수는 비록 스포츠를 그만두었지만 스포츠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살면서 두려움에 맞서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 스포츠를 통해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또 팀원으로 일하는 것, 나와 상대방의 일을 존중하는 법, 꾸준한 연습을 통해 일정한 목표 지점에 도달하는 것 등도 스포츠를 통해 배운 것이다.”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이코 교수는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 이 순간에 더 집중하려 하고 있지만, ‘원대한 꿈’은 기타리스트가 되는 것이다.”


윤현주 기자 hohoy@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