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멘스·BMW·알리안츠·구글…베를린 두고 뮌헨 찾는 이유 ‘뮌헨 공대’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뮌헨 공대 소속 연구진이 4차 산업혁명 기반의 스마트 팩토리 공정 프로세스를 확인하고 있다. 뮌헨 공대 제공 뮌헨 공대 소속 연구진이 4차 산업혁명 기반의 스마트 팩토리 공정 프로세스를 확인하고 있다. 뮌헨 공대 제공

독일의 수도는 베를린이지만 뮌헨을 제2의 도시 취급했다간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독일 바이에른주의 주도이자 최대 도시인 뮌헨은 역사가 깊고 문화와 예술이 풍부한 도시지만, 그것만으로 뮌헨 시민들의 자부심을 설명하긴 부족하다. 근간은 경제력이다. 뮌헨 시민들의 소득은 독일 최상위권이다. 지멘스, BMW, 알리안츠 등 글로벌 대기업의 본사는 수도 베를린이 아니라 뮌헨에 있다. 거리에는 청년들이 넘쳐난다. 모든 자원이 서울에 밀집된 대한민국의 모습과는 정반대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이 같은 선순환 구조의 출발점엔 세계적 수준의 대학 인프라가 있다.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을 주도하고 있는 뮌헨 공대(TUM)은 어떤 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있을까.

수준 높은 대학 인프라 구축

글로벌 기업 본사 유치 원동력

지멘스 연구소 대학 내 들어서

한 해 창업 스타트업 70여 개

공학·인문학 융합 인재 육성

■강한 도시 만드는 대학의 역할

영국의 매거진 모노클(Monocle)은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뮌헨을 꼽았다. 건강관리, 범죄율, 사업환경 등 다양한 요소가 평가에 반영됐는데, 모노클은 “뮌헨 대학에서 제공하는 생명공학, 컴퓨터 과학, IT, 엔지니어링 등 여러 분야의 교육 시스템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대학은 우수 인재 양성을 통해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 험난한 경쟁을 돌파한 졸업생들은 규모가 크거나 성장 가능성이 높은 회사에 취직한다. 지역대학에서 우수한 인재가 지속적으로 배출되면 청년이 기업을 찾아 떠나는 게 아니라, 기업이 청년을 찾아 본사를 옮긴다. 지멘스, BMW, 알리안츠 등 글로벌 대기업 본사는 물론이고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유수 기업의 연구소가 뮌헨에 자리잡고 있는 이유다.

글로벌 대기업 이전의 파급효과는 엄청나다. 이런 시스템이 지역사회에 뿌리내리면 고학력자뿐만 아니라 주민 삶의 질 전반이 개선된다. 실제 뮌헨 공대는 지난해 글로벌 대학교 고용가능성 순위(Global University Employability Ranking)에서 하버드, 케임브리지, 스탠포드 등에 이어 6위를 차지했다. 뮌헨대학교(LMU 뮌헨)도 26위를 차지했는데, 이는 독일 내에서 두번째로 높은 순위다.

창업에 대한 열기도 대단하다. 뮌헨공대에서 1년에 만들어지는 스타트업만 70여 개. 뮌헨 공대 대외협력실에서 근무하는 클라우스 베커 씨는 “재정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학생들이 정부가 제공하는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며 “다른 학과 프로젝트, 기업 연구소, 학회 세미나 등과 수시로 협력할 수 있도록 연결시켜 주지만 특정한 방향성을 제시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뮌헨 공대에서 탄생한 대표적인 스타트업은 셀로니스(Celonis)다. 디지털 비즈니스 프로세스 분석에 필요한 프로세스 마이닝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이 업체는 원화로 약 1조 2000억 원가량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독일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스타트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뮌헨 외곽에 위치한 뮌헨 공대 가힝(Garching) 캠퍼스의 전경. 안준영 기자 뮌헨 외곽에 위치한 뮌헨 공대 가힝(Garching) 캠퍼스의 전경. 안준영 기자

■수평적 커리큘럼으로 융합형 인재 육성

현재 뮌헨 공대에는 4만 1375명의 학생과 566명의 교수, 1만 501명의 교직원이 생활하고 있다. 물리학과 화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17개나 휩쓸었을 정도로 이공계열에 강점을 보이는 대학이고 이름도 ‘공대(Technische)’지만, 정치학과 철학 등 인문학도 양성을 위한 과정도 존재한다. 반쪽짜리 교육으로는 세상에 변화를 주기 어렵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체득했기 때문이다. 뮌헨 공대 게하르트 뮐러 부총장은 “우리는 철학과 IT가 연관이 있다는 걸 확신한다”며 “모바일 혁명, 환경오염 등 당면한 사회문제에 올바른 정책적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학과 간의 융합이 필수”라고 말했다.

그래서 대학의 커리큘럼은 유연하게 짜여 있다. 뮌헨 공대에 다니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석사 과정까지 이수하는데, 학사 과정에서 기계공학을 배운 학생이라고 할지라도 석사 과정에서 경제학을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석·박사 과정을 이수할수록 하나의 전공, 하나의 분야에 몰두해야 하는 국내의 교육 시스템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뮐러 부총장은 “대학 커리큘럼은 수직적이 아니라 수평적이 돼야 한다”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공계 인재’가 아닌 ‘융합형 인재’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학과 간의 교류도 자연스럽다. 뮌헨 공대는 학과별 수업이 아니라 프로젝트가 중심이 되는 교육을 지향한다. 차세대 고속 열차인 ‘하이퍼루프(HyperLoop)’의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연구, 기계조작, 코디네이터, 매니저 등 팀을 세분화해 제각기 역할에 맞는 전공자를 영입한다. 50여 명이 한 팀이 되는데 전공은 모두 다르다. 이들의 목표는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면서 최고의 속도를 낼 수 있는 하이퍼루프를 만드는 것이다. 베커 씨는 “테슬라 등에서 주최한 대외 경진대회에서 여러차례 입상한 경험도 있다”며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면서 자신이 최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을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게 뮌헨 공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뮌헨 공대 게하르트 뮐러 부총장. 안준영 기자 뮌헨 공대 게하르트 뮐러 부총장. 안준영 기자

■지멘스 연구소를 캠퍼스 안으로

세계적으로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지멘스는 뮌헨 공대 가힝 캠퍼스에 새로운 연구 센터를 건설할 예정이다. 100여 명의 지멘스 연구원들이 뮌헨 공대의 인재들과 로봇 공학, 자율 시스템, IT 보안 등을 주제로 협업하게 된다. 글로벌 대기업이 대학과의 협업을 강조하다 못해 이제는 대학 내에 연구센터를 짓는 수준에 이르게 된 것이다.

지난해 구글은 뮌헨 공대를 ‘우수 파트너’로 선정하고 재능있는 젊은 연구원들을 지원하기 위해 100만 유로(13억 원)를 기부하기로 했다. 구글의 인공지능, 기계 학습, 로봇 공학 분야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미래 인재 양성이 아니라 즉각적인 전력 보강을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셈이다.

이처럼 뮌헨 공대는 산학협력을 학교 차원에서 매우 강조한다. 교수를 선발할 때부터 기업에서 실무 경험을 쌓은 인재를 선호한다. 뮐러 부총장 역시 BMW에서 10년 간 근무하며 100여 명의 연구원들을 관리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 뮐러 부총장은 “학과 커리큘럼을 위해 기업 연구진들이 와서 잠깐 가르쳐 주고 가는게 아니라 연구소 자체를 대학 내에 두게끔 만든다”고 말했다. 뮌헨 공대는 이를 ‘기업 캠퍼스’라고 부르는 데 지멘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뮌헨 공대 내에 연구소를 두고 있다.

뮌헨 공대는 또 산학협력으로 인해 대학의 학문적 기틀이 기업에 종속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명확한 규칙을 만들었다. ‘뮌헨 공대 연구 행동강령’을 만들어 이를 어길 경우 과감하게 교류를 포기할 정도다. 뮐러 부총장은 “산학협력 연구과제들은 투명하게 오픈되고 누구나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주제들이어야 한다”며 “투명성을 전제로 대학이 기업에 종속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자유로운 학문 연구를 위해 중요하다”고 밝혔다.



뮌헨(독일)=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