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의혹 ‘원전 여과배기 설비’ 사실상 백지화… 575억 날릴 판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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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기장군 장안읍 고리원자력본부 고리 1~4호기 전경. 부산일보DB 부산 기장군 장안읍 고리원자력본부 고리 1~4호기 전경. 부산일보DB

성능 미달, 부실 검증 등 각종 의혹이 제기된 원전 여과배기계통 설비(CFVS) 계획(〈부산일보〉 2018년 10월 4일 자 1면 등 보도)이 사실상 백지화되면서 수백억 원의 예산이 낭비될 위기에 놓였다. 이 계획이 강행됐다면 수천억 원의 예산이 추가로 낭비될 수 있어 백지화는 불가피했던 것으로 보인다.

28일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한수원은 가동 중인 원전 22기에 대한 CFVS 설치 계획을 철회하는 행정절차에 착수했다.

성능 미달·부실 검증 의혹 CFVS

한수원, 설치 철회 행정절차 착수

이미 집행한 예산 낭비 불가피

그나마 수천억 추가 소요는 막아

감사 결과 따라 책임론 불거질 듯

CFVS는 원자로 내부 압력이 높아졌을 때 방사선의 외부 유출 없이 내부 공기를 빼내 건물 붕괴를 막는 설비다. 한수원은 고유량 이동형펌프를 활용한 대체살수를 통해 CFVS를 대체하는 방안을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한 상태다. 대체살수는 원전 중대사고에 대비한 필수 대처 설비다.

CFVS 사업이 백지화되면서 대규모 예산 낭비는 불가피하다. 한수원은 2017년 입찰을 통해 제품 국산화에 성공했다는 M 사와 440억 원 상당의 CFVS 납품계약을 체결하는 등 이미 575억 원의 예산을 집행한 상태다. 전체 사업비는 2242억 원으로 책정돼 있었으며, 실제 운영이 시작되면 매년 막대한 운영비 지출도 예상됐다. 이번 백지화로 그나마 추가 예산 낭비는 막았다.

CFVS 사업은 그동안 숱한 논란에 휩싸였다. 실물 제작 없이 수십 분의 1 수준의 축소품으로 성능 테스트가 이뤄지는 등 부실 검증 의혹이 일었다. 성능 측정도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상용화 수준에 미달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현재 감사원은 CFVS 국산화와 납품 과정에 대한 감사를 벌이고 있다. 감사 결과에 따라 막대한 예산 낭비와 원전 안전사고 방치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다.

CFVS 사업 무산은 이번 국감에서도 도마에 올랐다. 지난 14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막대한 예산 낭비 문제를 지적하며 “CFVS 적용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시인하는 셈”이라며 “누가 책임을 질 것인지 의문”이라고 질타했다. 경비가 4분 1 수준에 불과한 대체살수가 있는데도 CFVS를 무리하게 추진한 배경도 따져 물었다.

이에 대해 한수원 정재훈 사장은 “사업이 계속됐다면 2242억 원이 다 지불됐을 것”이라며 “후쿠시마 사고 뒤 규제기관에서 반드시 감압설비를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고 말했다. 또 “중대사고 안전성 기준이 강화돼 중도 백지화됐다”는 취지의 답도 내놓았다. 그러나 현재 박 의원이 “원안위에 질의한 결과 애초부터 안전성 기준이 있었다”고 반박하고 있어, CFVS 도입 과정의 적절성 등도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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