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물고문에 내뱉은 ‘예’ 한마디로 강도살인범 됐다”…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 결정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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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21년간 옥살이를 한 최인철(왼쪽), 장동익 씨가 6일 오후 부산고등법원에서 재심 결정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1990년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21년간 옥살이를 한 최인철(왼쪽), 장동익 씨가 6일 오후 부산고등법원에서 재심 결정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6일 오후 3시 부산고등법원 301호 법정. ‘낙동강변 살인사건’으로 21년간 옥살이를 한 최인철(59)·장동익(62) 씨가 법정에 섰다. 두 사람의 사건을 다시 재심하라고 재판부가 결정문을 읽자 최 씨와 장 씨 모두 눈물을 흘리며 무너졌다. 반평생을 바쳐 이제야 ‘강도살인범이 아니다’고 해명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28년 만에 얻은 ‘해명의 기회’

1990년 1월 4일 부산 사상구 엄궁동에서 발생한 강도살인 사건은 두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놨다. 미제 사건으로 분류됐던 이 사건은 1년 10개월 뒤 장 씨와 최 씨가 사하경찰서로 연행되면서 돌변했다. 간혹 인사나 건네던 먼 친척 사이인 두 사람이었다. 그러나 5일간의 고문 끝에 두 사람은 함께 강도살인 행각을 벌인 공범이 됐다.

1급 시각장애인인 장 씨는 한밤에 낙동강변에서 격투 끝에 살인했다는 죄명을 뒤집어썼다. 장 씨는 “물고문을 견디지 못해 ‘예’라고 한마디 한 게, 이렇게 한을 품고 살아가게 될 줄 몰랐다”며 “앞으로 우리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1990년 부산 엄궁동 살인사건

범인 지목된 최인철·장동익 씨

“28년 만에야 해명할 기회 얻어

고문한 경찰관 절대 용서 못 해”

재판부, 청구인·가족 향해 사과


최 씨는 아직도 고문 가해자들을 용서할 수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고문했던 경찰과 한 하늘 아래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저주스럽다”며 “용서란 자비를 비는 자만 받을 수 있는 관용이니, 고문했던 이들에게 절대 용서는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두 사람이 옥살이를 시작할 무렵 이들의 딸들은 겨우 걸음마를 뗀 나이였다. 만날 수 없는 아빠를 그리워하며 자라난 두 딸은 엄마가 되어 초조하게 법정 밖에서 재심 결정을 기다렸다. 재심 결정 뒤 두 아버지가 재판정을 나오자 딸들이 눈물을 그치지 못하는 아버지 곁을 지켰다. “옥살이 시작할 때 두 살이던 딸이 손녀를 낳았다. 손녀를 안으니 마치 딸을 보듬고 있는 기분”이라는 장 씨의 말은 냉철해야 할 재판부의 가슴마저 뒤흔들었다.


■28년 만에 전해진 사법부의 ‘사과’

‘낙동강변 살인사건’은 이미 지난해 4월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에서 먼저 발표와 사과는 이뤄졌다. 당시 두 사람의 변호를 맡았던 문재인 대통령도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 ‘변호사 생활 동안 가장 한이 됐던 안타까운 사건’이라며 소회를 전했다.

공권력에 의한 조직적인 가해행위가 1990년대 당시 만연해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재심사유의 엄정성’만 놓고 보자면 대법원까지 가서 확정된 판결을 다시 심리하라는 결정이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6차례의 사건 심문을 거치면서 ‘누명만은 제발 벗겨 달라’는 이들의 목소리가 재판부에 전해졌다. 심문을 진행한 김문관 부장판사는 “이들을 더는 기다리게 할 수 없다고 판단해 일부 재심청구 요소만 따져 최대한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며 “1991년 11월 8일 두 사람의 불법체포와 감금은 명백히 경찰의 직권남용이며 이후 5일간 사하경찰서 강력계사무실 등지에서 이루어진 폭행과 물고문 역시 청구인들의 진술이 일관되고 구체적이어서 적극적으로 증명됐다고 볼 수 있다”며 ‘재심 개시’를 주문했다.

이날 재판부는 재심 개시 결정을 개별 고지하지 않고 법정에서 재심청구인 본인에게 직접 설명했다. 장 씨와 최 씨, 두 사람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 몸부림친 27년의 세월에 대한 예의였다.

재심 결정을 알린 김 부장판사는 공판을 마무리하며 청구인과 가족을 향해 목례를 했다. 그는 “30년 가까운 기간 가혹행위를 호소했지만 사법부의 일원인 우리 재판부는 이제야 재심개시 결정으로 그 일부에만 응답하게 됐다. 우리 재판부는 재심청구인 두 사람과 돌아가신 장동익 씨의 어머니를 포함해 모든 가족에게 늦어진 응답에 대한 사과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권상국·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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