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수백억 날린 부실 원전 안전 설비, 책임 엄중히 물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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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국내 원전의 안전을 위해 밀어붙였던 핵심 대책이 9년 만에 결국 수백억 원의 예산만 날린 채 공식 백지화됐다고 한다. 이 대책은 원전 사고 발생 때 격납고 내부 공기를 배출해 압력을 낮춰 주는 감압설비 사업으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최근 이를 폐기하기로 한 것이다. 그동안 숱한 부실·특혜 논란에도 이를 강행하다 막대한 예산만 날린 정부와 한수원의 무능과 독단이 빚은 ‘행정 참사’라고 할 수밖에 없다.

당시 정부가 후쿠시마 사고 뒤 국내 원전 안전용으로 발표한 50개 대책 중 핵심인 이 설비는 그때에도 국내는 물론 미국, 캐나다 등에서 비용 대비 성능 논란으로 ‘의문 부호’가 붙은 상태였다. 그러나 한수원은 안팎의 이 같은 지적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설비 도입을 결정했다. 국민 생명과 직결된 데다 엄청난 예산이 투입되는 중요 사안임에도 전문 분야임을 핑계로 외부 장벽을 치는 고질적인 ‘끼리끼리 폐쇄주의’ 문화와 오만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이 감압설비는 2015년까지 2000억 원 이상을 들여 국내 가동 21기 원전에 순차적으로 도입될 계획이었다. 이에 따라 한수원은 먼저 2012년 월성 1~4호기에 500억 원을 들여 프랑스 업체의 제품을 설치하기로 했다. 그러나 유일하게 설비가 도입된 1호기는 이미 폐로가 됐고, 2~4호기는 아직도 기술적인 문제로 준공조차 못 했다고 한다. 5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국가사업이 어떻게 이토록 허술하고 무책임하게 진행됐는지 기가 찰 뿐이다.

한수원은 또 감압설비를 국산화한다며 연구과제비로 245억 원을 투입했지만, 이 역시 업체 선정의 공정성과 성능 검증 논란만 남긴 채 예산만 날렸다. 그나마 사업의 중도 백지화로 추가 예산 낭비를 막은 게 다행이라니, 코미디 같은 상황에 국민만 바보가 된 느낌이다. 그런데도 뚜렷하게 책임지는 이도 없다. 한수원이 ‘복마전’으로 불리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현재 감사원 감사가 진행 중이라지만, 이번만은 반드시 일벌백계 차원에서라도 관련자들의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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