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선 실습비 25년째 한 달 30만 원… 허드렛일 도맡아”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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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양대 실습생 사망 파문

10일 해외 승선실습 도중 열사병 증세로 사망한 한국해양대생 A 씨가 탑승한 팬오션의 선샤인호. A 씨는 실습기관사 자격으로 이 배의 기관실에서 일을 돕다 이 같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리아쉬핑가제트 제공 10일 해외 승선실습 도중 열사병 증세로 사망한 한국해양대생 A 씨가 탑승한 팬오션의 선샤인호. A 씨는 실습기관사 자격으로 이 배의 기관실에서 일을 돕다 이 같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리아쉬핑가제트 제공

“제가 실습을 나갈 때도 지원비가 월 30만 원이었습니다. 그때가 25년 전입니다. 기가 찰 노릇입니다.”

〈부산일보〉 취재에 응한 한국해양대 출신 한 직장인의 이야기다. 그는 “월급은커녕 실습지원비 명목으로 수십 년째 월 30만 원을 받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해양대생이 승선 과정에서 얼마나 열악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보여 주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월급 아예 없고 지원비 명목 열정페이

실습 선사가 취업 가산점 좌지우지

대학도 실습생도 제대로 항의 못 해

업계 반발 우려 해수부도 뒷짐만

해운업계 악습·부조리 개선 한목소리


승선 실습을 나갔다 4일 만에 숨진 한국해양대생 3학년 A(21) 씨 사고(부산일보 지난 12일 자 1면 보도 등)가 해운업계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졸업생과 학계는 물론 현장에 있는 현업 종사자까지 ‘해운업계의 악습과 부조리가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승선 실습 과정의 부조리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게 수십 년째 제자리인 승선 실습비다. 위탁 승선 실습에 나선 학생들은 선상에서 참관 업무만 하게 돼 있어, 월급이 아니라 지원비를 받는다. 그러나 실제 승선 실습을 마친 해양대생들은 ‘참관 수준 이상의 업무를 했다’고 털어놨다. 한국해양수산연수원의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승선 실습생 51%가 ‘실질적으로 근로에 종사했다’고 답했다. 3년 전 해양대를 졸업한 B 씨도 “갖은 심부름을 비롯해 기계가 고장 나거나 할 때는 잡다한 일까지 도맡아 한다. 실제 일을 시켜 놓고도, 이건 노동이 아니라 실습이라고 하니 정당한 대가를 못 받는 셈”이라고 전했다.

해운업계가 똘똘 뭉쳐 동일한 수준의 지원비를 주는 것도 승선 실습의 부조리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열정페이’ 문제가 부각되면서 육상 기업은 의식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접근성이 떨어지고 여론의 사각에 있는 해상 현장에서는 악습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해양대도 취업률을 좌지우지하는 선사 측에 강력한 조치를 요구하기 어렵다. 선사가 실습생에 취업 가산점을 주고 남학생은 병역 문제까지 해결해 주고 있어, 오히려 해양대가 선사의 눈치를 보는 구조라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감만 높아간다. 해양대 학부모 C 씨는 “아들이 내년부터 실습을 나가야 한다.학교나 해수부는 열악한 실습생들의 처우 개선 대책을 언제 마련해 준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현재 실습 선원의 처우와 권리 등을 담은 선원법과 선박직원법이 일부 개정돼 오는 8월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실습지원비 현실화 등의 내용은 빠져 있다. 이 때문에 ‘반쪽짜리’ 개정안이라는 비판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해양대 D 교수는 “해운업계는 영세한 데다 좁아서 관행과 카르텔이 공고할 수밖에 없다. 몇몇 대형 업체를 빼고는 업계에서 쥐어짤 수 있는 게 인건비밖에 없는 상황이다. 노동환경 개선 이야기는 전부터 나왔지만 쉽게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주무부서인 해양수산부도 소극적이다. 해기사를 양산해야 하는 해수부는 실습 선원 관련 제도 강화에 따른 업계 반발을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수부 한 관계자는 “당장 실습생 관리 규정을 손보면 선사 측에서 ‘학생들 안 태우겠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어서 개정 법이 시행되더라도 근로감독의 수위를 조절해 가며 해야 할 듯하다”고 털어놨다.

반면 실습 선원에 대한 처우 개선과 제도 개선이 늦춰질수록 또다른 사고의 재발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부산연구원 장하용 연구위원은 “안전은 결국 돈이다. 아무리 큰 배라도 10명 미만만 탑승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실습비 문제도 문제지만 일단 선박에 필수적으로 탑승해야 하는 인력부터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A 씨의 시신은 지난 14일 오후 7시께 고향인 부산에 도착했다. 17일에 검찰과 부산해경이 참관 아래 부검이 진행되며, 유족들은 부검 뒤 A 씨의 장례를 치를 예정이다.

서유리·이상배·김준용 기자 yool@busan.com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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