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톡톡 봄이 똑똑…통도사·선암사 탐매 여행

정상섭 선임기자 ver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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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통도사의 자장매 고목 등걸에 매화가 보석처럼 피어 있다. 언 땅 위에서 꽃을 피우고 맑은 향기를 뿜는 매화는 봄이 시작됐음을 알려주는 전령이다. 양산 통도사의 자장매 고목 등걸에 매화가 보석처럼 피어 있다. 언 땅 위에서 꽃을 피우고 맑은 향기를 뿜는 매화는 봄이 시작됐음을 알려주는 전령이다.

겨울답지 않은 겨울이 이어지더니 봄을 눈앞에 두고 꽃샘추위가 기승이다. 하지만 우수 지나 경칩을 앞두고 있으니, 봄은 어느새 우리 앞에 바짝 다가섰다. 언 땅 위에서 꽃을 피우고 맑은 향기를 뿜는 매화는 봄이 시작됐음을 알려주는 전령이다. 올해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광양매화축제, 원동매화축제가 줄줄이 취소되는 등 그야말로 춘래불사춘, 봄 같지 않은 봄을 맞이하게 됐다. 하지만 깊은 산 속, 그윽한 절집 속의 매화를 찾아가는 ‘탐매 여행’을 빠뜨리기엔 너무나 아쉽다. 봄바람에 날리는 매화 향기를 맡지 않고서야 어찌 봄을 맞았다 할 것인가.


가장 일찍

가장 오래 피는

‘자장매’ 활짝


천연기념물

600살 ‘선암매’

짙은 향 고혹적


매곡동 탐매 마을

‘감성 핫플’ 부상



가장 일찍 피어나는 통도사 자장매

겨울을 이겨내고 봄이 오고 있다는 분명한 신호가 바로 매화다. 백 가지 꽃을 누르고 가장 먼저 피었다고 장원급제한 선비에 비유해 장원화(壯元花), 눈 속에 피면 설중매(雪中梅), 한 줄기 가지 위에 꽃이 피는 일지매(一枝梅) 등 다양한 별칭으로 불린다.

양산 통도사에는 절을 창건한 자장율사의 법명을 따 ‘자장매’로 불리는 유명한 매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일찍, 또 가장 오랫동안 핀다는 통도사 자장매가 올해도 어김없이 화사한 연분홍 꽃망울을 터뜨렸다.

‘먼 길을 걸어온 어여쁜 봄이 마침내 여기 앉아있네(중략)해마다 첫사랑의 애틋함으로 제일 먼저 매화 끝에 피어나는 나의 봄’(이해인, 매화 앞에서).

추운 겨울을 이겨낸 그윽한 자장매 향기를 쫓아 봄마다 애써 통도사를 찾는 사진작가와 화가 등 탐매꾼들이 제법 많다.

수령 370년의 자장매는 통도사 일주문을 지나 영각(고승의 초상을 모신 전각) 앞에 있다. 임진왜란 후 통도사를 중창한 우운대사가 불타버린 역대 조사의 진영을 모실 영각을 완성하자, 홀연히 매화 싹이 자라나 해마다 납월(음력 섣달, 양력 1월)에 꽃을 피웠다고 전해진다.

봄을 시샘하듯 뒤늦은 눈이 내린 날, 고색창연한 영각을 배경으로 연분홍 꽃을 피운 자장매는 한 폭의 동양화를 방불케 했다.

통도사에는 성보박물관 입구 쪽의 축 늘어진 수양매화, 극락전 앞의 단아한 두 그루의 홍매화와 백매화, 지혜의 향과 해탈의 향 등 다섯 가지 향을 내뿜는 오향매 등 여러 종류의 매화가 그윽한 향기를 내뿜고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순천 선암사의 백매화. 해마다 봄이면 매화가 구름처럼 피어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순천 선암사의 백매화. 해마다 봄이면 매화가 구름처럼 피어난다.

매화향 그윽한 순천 선암사와 탐매 마을

바람결에 실려 오는 매향을 좇아 오래된 매화나무, 고매(古梅)를 찾아다니는 여행은 봄이 주는 선물이다. 통도사의 자장매가 그렇듯 고매는 으레 오래된 사찰 안에 심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스님들은 ‘추위가 한바탕 뼛속 깊이 사무치지 않고서야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꽃 향기를 맡을 수 있겠느냐’며 혹독한 수행을 견뎌냈다.

전남 순천의 선암사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늙은 매화나무 두 그루가 있다. 절 이름을 붙여 선암매(仙巖梅)라고 부르는 이 나무의 나이는 600살이 넘는다. 원통전 뒤편에 떡하니 버티고 선 백매와 각황전을 따라 운수암으로 오르는 담장 길에 줄지어 선 50여 그루의 매화나무 중 다섯 번째에 선 우람한 홍매가 그것이다.

사찰에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선암매는 약 600년 전에 천불전 앞의 와룡송과 함께 심어졌다. 세월만큼 비틀리고 굽은 가지에선 매년 2월 중순부터 어김없이 하얗고 붉은 매화가 구름처럼 피어나 마치 꽃 대궐을 방불케 한다. 특히 담장 길을 따라 가지를 걸치고 앞다퉈 피어나는 홍매화는 단아함을 넘어 고혹적이기까지 하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매화는 순천 선암사의 선암매와 함께 구례 화엄사의 화엄매,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 등 네 곳이다. 그 가운데 선암매가 가장 생육상태가 좋고 향기가 강한 것으로 유명하다.


탐매 마을에는 붉은색 홍매화가 벌써 한창이다. 탐매 마을에는 붉은색 홍매화가 벌써 한창이다.

순천의 원도심에 있는 매곡동 탐매 마을은 홍매화가 전국에서 가장 먼저 피는 곳이자 젊은 감성으로 가득 찬 떠오르는 핫플레이스다.

매곡동은 조선 중기 학자인 배숙이 이곳에 홍매를 심고 초당을 지어 그 이름을 ‘매곡당’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 탐매 마을은 주민들이 15년 전부터 홍매화를 심고, 마을 미술 프로젝트로 골목길과 담장, 건물 벽 등을 붉은 매화꽃으로 장식하면서 마을 자체를 브랜드로 가꾼 성공 사례로 꼽힌다.

순천 구도심에 자리한 웃장 맞은편에 탐매 마을로 가는 골목이 있다. 골목길에 들어서면 온몸 가득 매화향이 가득 달려든다. 집마다 걸린 문패에도, 우편함과 헌 옷 수거함에도 홍매화가 그려져 있어 마을 전체에 사시사철 매화가 활짝 피어있다.

탐매희망센터에서 홍매화 벽화길을 따라 삼산중학교와 순천대학교 후문까지 여유롭게 골목길을 거닐면 발걸음마다 매화향이 묻어나는 느낌이다.

부친을 살리기 위해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수혈했다는 효자를 기리는 효자비와 조각 작품 옆에 심어진 홍매화는 선혈같이 붉은 꽃잎으로 여행객의 발길을 붙든다.

글·사진=정상섭 선임기자 verst@busan.com


정상섭 선임기자 ver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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