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금아의 그림책방] 진짜 늑대였을까?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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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 공연예술팀장

“늑대가 나타났다!”

외침을 듣는 것만으로 움찔한다. 늑대가 실제 나타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늑대’라는 단어 자체가 중요하다. 머릿속에 들어있는 늑대의 이미지를 통해 두려움을 느낀다. 사람을 공격하는 해로운 존재임에 틀림없다는 ‘무조건적 믿음’이 공포의 근원이다.

〈근데 그 얘기 들었어?〉에서 밤코 작가는 소문과 공포가 어떻게 생겨 나는지 보여준다. 누군가가 “새로 이사 왔다”고 인사를 건네는데 눈이 나쁜 두더지에게는 길쭉하고 둥글고 네모난 모양만 어렴풋이 보인다. 소문이 시작된다. “네모난 몸, 둥근 얼굴, 뾰족한 뿔이 난 새 주민이 왔다.” 전달자의 창작력이 하나씩 더해지며 소문은 점점 커진다. 얼굴엔 가시가 돋고, 몸은 산만 하고, 삐죽삐죽 거대한 이빨이 생긴다. 나중에는 산까지 씹어 먹는 괴물이 된다. 동물들은 “이제 우리 모두 죽었다”며 난리를 친다. 공포가 극에 달하는 순간 밝혀진 두려움의 실체는 각설탕과 막대사탕을 옮기던 ‘개미’ 한 마리.

프랑스 작가 마티외 모데의 〈도망쳐, 늑대다!〉도 고정관념이 부르는 공포를 담았다. 빨간 새가 샌드위치를 먹는 늑대를 발견한다. 깜짝 놀란 빨간 새는 말한다. “여기 늑대가 있어!” 쥐를 부르고, 돼지를 부르고, 거북이를 부른다. 늑대의 행동은 보지 않는다. ‘늑대가 있다’는 사실만 중요하다. “늑대가 나타났다!”며 우르르 뛰어다닌다. 평화롭게 식사를 하던 늑대가 말한다. “샌드위치 먹는 늑대 처음 봐?” 이쯤 되면 새와 친구들이 각성할 줄 알았는데… 마지막까지 그들은 공격 의도가 1도 없는 ‘늑대의 출현’만 외친다.

아드리앵 파를랑주의 〈곧 이 방으로 사자가 들어올 거야〉는 실체 없는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 사자의 방에 들어간 소년이 밖에서 소리가 들리자 얼른 숨는다. 다음에 들어온 다른 소년

도 바깥 소리에 놀라 숨는다. 뒤이어 들어온 소녀도, 개도, 새도 숨는다. 그들의 행동을 장악한 것은 딱 한 문장. ‘곧 이 방으로 사자가 들어올 거야.’ 나중에 온 진짜 사자마저 달라진 방 분위기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 덜덜 떤다(그림). 마지막 방문객은 작은 쥐. 모두 뜬눈으로 밤을 새울 때 쥐 홀로 단잠을 잔다.

모르니 두려운 것인데 진실을 알려고도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선입견과 편견의 틀 안에서 한 치의 움직임도 없다. 소문이 만든 ‘허구의 늑대’를 두려워하는 바보짓. 그림책의 경고에도 지금 누군가는 말하고 있을 지 모른다. “근데 그 얘기 들었어?” chris@busan.com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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