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법관은 빠져나가는 ‘구멍 뚫린 전관예우방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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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심 선고 뒤 로펌 간 판사

최근 부산고법 퇴직 법관인 A 전 판사가 자신이 맡은 사건에서 승소한 대형 로펌으로 이직한 것은 사법 불신을 초래할 뿐 아니라 전관예우방지법의 허점을 그대로 보여 준다.

고법 부장 등 고위 법관에 적용
대법원 윤리 규정도 두루뭉술
작심 편향 판결해도 제재 못 해
울산 주행세 건은 결국 대법원행


A 전 판사는 지난해 10월 30일 울산시와 모 증권사 사이에 벌어진 체납 주행세 손해배상 소송에서 증권사 손을 들어줬고, 올해 3월 이 증권사가 선임했던 로펌으로 자리를 옮겼다. 선고와 로펌행 간격이 4달 정도에 불과해 재판의 공정성 문제가 떠오른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고등법원 부장판사나 검사장 이상 고위 판검사는 퇴직하기 전 5년간 소속된 부서·기관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대형 로펌에 퇴직한 날로부터 3년 동안 취업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준이 되는 대형 로펌은 ‘연간 매출액 100억 원 이상’이다. A 전 판사가 취업한 로펌도 여기에 해당하지만 A 전 판사는 고위 법관이 아니어서 대상이 아니다.

법무부가 지난 17일 ‘법조계 전관 특혜 근절방안’을 발표했지만, 이마저도 사각지대가 있다. 2급 이상 공무원의 경우 퇴직 전 2년간 근무했던 기관의 사건을 퇴직 후 2년간 수임하지 못하도록 했다. 지법 수석부장판사와 고법 부장판사, 지검 차장검사 등이 대상자다.

A 전 법관처럼 사각지대에 있는 일반 법관이 대형 로펌 이직을 생각해 편향된 판결을 하더라도 입증하거나 제재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얘기다.

재판의 공정성과 관련해서도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의 권고 사항이 있지만 무용지물이다. ‘법관이 퇴직 후 법무법인 취업 시 유의사항(4호)’은 법관이 특정 법무법인이 선임된 사건을 완결한 후 이 법인에 취업해 재판 결과의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면 ‘상당한 기간’이 경과한 후 취업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두루뭉술하게 표현했다.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요즘에는 전관예우에 대한 비난 여론을 의식해 대형 로펌도 퇴직 법관 영입에 더욱 신중을 기한다. 퇴직 법관이 국민 법 감정을 무시하고 곧바로 로펌행을 택하는 것이 외형상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한변호사협회도 지난해 12월 전관예우 철폐와 직역 수호 등을 내걸고 자체 개혁위원회를 출범하기도 했다.

주행세 체납을 둘러싼 울산시와 증권사의 7년 전쟁은 대법원까지 가면서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이 소송은 2014년 울산에서 불거진 주행세 포탈 사건에서 파생했다. 앞선 형사 재판에서는 증권사 간부였던 B 씨가 석유도소매업자와 짜고 바지회사를 차린 뒤 주행세 66억 원을 포탈한 혐의로 징역 5년에 벌금 134억 원이 확정됐다. 석유도소매업자는 징역 5년에 벌금 497억 원, 바지업체 대표도 징역 3년에 벌금 249억 원과 집행유예 4년이 확정됐다. 벌금 액수만 보더라도 사건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된다. 이번 조세 포탈로 발생한 부당이득은 상당부분 증권사와 이 회사가 만든 특수목적법인 투자자에게 돌아갔다.

지자체가 납세의무자가 아닌 조세포탈범(B 씨)과 그 조력자로 추정되는 회사(증권사)를 상대로 체납세 손해배상 소송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이번 조세포탈 사건으로 지자체가 아직 받지 못한 주행세는 울산이 39억 원, 경기도 평택 83억 원 등 총 122억 원에 달한다. 현재까지 1·2심 민사 재판부의 판결은 180도 달랐다. 울산지법은 “피고들과 같이 조세 채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자들을 보호하는 것이 조세법률주의의 본래 취지라고 할 수 없다”며 울산시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반면 2심 재판부는 “이 사건 경유와 관련해 주행세 납세의무자는 실제 소유자인 석유 도소매업체여서, 주행세를 바지회사로부터 징수하지 못했음을 전제로 한 울산시 주장은 옳지 않다”며 “따라서 증권사에 공동불법행위자의 책임이나 사용자의 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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