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법 불신 부르는 법관 전관예우,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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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국민들에게 이유를 물으면, 대다수가 전관예우를 가장 큰 병폐로 꼽을 정도다. 이런 심각성 때문에 법무부가 전관예우 방지규정을 만들었지만, 국민이 우려하는 수준의 전관예우를 막기에는 크게 미흡하다. 최근 부산과 울산에 걸쳐 이 규정을 비웃는 일이 생겨 통탄스럽다. 울산시 등에 따르면, 부산고법의 한 퇴직 법관 A씨가 자신이 판사 시절 맡았던 사건에서 승소한 대형 로펌으로 이직한 것으로 드러나 사법 불신을 가중시킨다. A씨는 담당 사건 판결과 퇴직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로펌에 취직하는 등 전관예우 방지제도의 허점을 그대로 보여줘 개선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A씨는 판사로 근무한 지난해 10월 30일 울산시가 모 증권사를 상대로 낸 체납 주행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증권사의 손을 들어줬고, 지난 2월 24일 명예퇴직했다고 한다. 항소심 판결은 2018년 10월 약 24억 90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인정해 울산시에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던 울산지법 1심 결과를 뒤집은 것으로, 울산시는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A씨가 1심과 정반대 판결을 내놓은 데다 선고한 지 불과 5개월도 안 돼 승소한 증권사를 변호했던 로펌으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에 재판의 공정성이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주위에선 A씨의 선고와 로펌행에 연관성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판사가 명퇴 직후 곧바로 이해관계가 있는 로펌에 가는 게 전관예우 근절이라는 시대적 요구에도 맞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부산고법 판사 선고 이후 로펌행 물의
전관예우방지법 제정해 신뢰 회복해야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전관예우 방지를 위해 고법 부장판사나 검사장 이상 고위 판·검사는 퇴직 전 5년간 소속된 부서·기관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대형 로펌에 퇴직한 날로부터 3년 동안 취업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기준이 되는 대형 로펌은 ‘연간 매출액 100억 원 이상’이다. A씨가 취업한 로펌도 이 기준에 해당하지만, A씨는 고위 법관이 아니어서 법을 피해 갈 수 있었다. 적용범위를 일반 법관으로 확대할 필요성이 대두되는 이유다. 법무부가 지난 17일 ‘법조계 전관 특혜 근절규정’을 발표했으나, 여기에도 사각지대는 존재한다. 2급 이상 공무원은 퇴직 전 2년간 근무했던 기관의 사건을 퇴직 후 2년간 수임하지 못하게 했는데, 일반·하위 법관의 경우 대형 로펌 이직을 염두에 두고 편향된 판결을 하더라도 입증하거나 제재할 수단이 마땅치 않아 보완이 요구된다.

전관예우 근절은 사법부의 신뢰 회복을 위해 꼭 필요하다. 특히 국민에게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과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언제까지 전관예우를 방치하고 있을 것인가. 국회와 사법부 등 관계기관들이 지금도 법조계에 전관예우 관행으로 인해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고 있는 사실을 인정해 전관예우방지법 제정 같은 구체적·근본적인 해결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다. 법원과 검찰 근무경력에 기댄 일부 전관 변호사들이 사법 정의를 구현하기보다 부당한 유착으로 쉽게 큰 돈을 벌려고 했던 현실을 법조계 전체가 부끄러워하며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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