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감 실’로 쌓아 올린 자연의 폭삭함
‘폭삭하다.’
작가는 자신의 그림이 폭삭한 느낌을 준다고 했다. 물감으로 만든 실을 겹겹이 쌓아 올린 그림 속에 공기층이 생기기 때문이다. 푹신해서 누르면 쑥 들어갈 것 같은 그림을 그린 주인공은 강혜은 작가다. 강 작가의 전시 ‘라인-피스(Line-Piece)’가 4월 12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중동 맥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엄마가 패션디자이너로 서면에서 의상실을 크게 하셨어요. 어릴 때부터 의상실 공장이 놀이터가 됐고, 그때 가지고 놀던 실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내면에 깔려 있어요.” 강 작가는 따뜻한 유년의 기억을 작업에 담고 싶었다. 실과 천으로 테이핑, 콜라주 등 오브제 작업을 하다 생각했다. ‘어쩌면 물감을 실처럼 만들어 씨실·날실로 짜는 작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강혜은 ‘라인-피스’ 전시회
물감 덩어리로 실 자아내 작업
20년 거주 우암산 자연 담아
모네 오마주 ‘수련’도 눈길
물감으로 실 만들기가 쉽지는 않았다. 물감 덩어리에 손으로 압력을 가해 실처럼 자아내는데 처음에는 덩어리가 ‘퍽’ 터지기도 했다. 원하는 굵기로 균등하게 실을 뽑아내려면 호흡도 조절해야 했고, 손에 엄청난 힘이 들어갔다. 손이 너무 아파 숟가락을 못 들 때도 있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휘어졌다. 인고의 시간을 거쳐 작가의 손은 그림을 그리는 연장이 됐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그림의 ‘기법’이 됐다면 어른이 된 이후의 경험은 그림의 ‘테마’가 됐다. 부산 사람인 강 작가는 결혼 후 경북 상주시 우암산에서 20년을 살았다. “환경운동가인 남편을 따라 산속으로 들어갔죠. 고라니·새 같은 동물처럼 자연의 일부로 살며 보고 느낀 풍경들이 그림 속에 들어있을 겁니다.”
발아래 야생화가 지천이고, 그 너머로 산과 들이 보이는 그림은 작가가 산에서 어떤 풍경을 보고 살았을지를 짐작하게 한다. 붉은 색 지붕이 있는 작은 집에는 초등학교를 다닐 때 본 전포동 산비탈과 딸과 떠난 유럽 여행길에 만난 집의 이미지가 겹쳐 있다.
강 작가의 그림은 가까이서 볼 때와 떨어져서 바라볼 때 이미지가 다르다. 판넬 위에 캔버스를 입히고 여러 색 물감을 겹쳐 올린 그림은 가까이서 보면 추상화 같다. 그러나 적당한 거리로 물러서서 보면 특유의 공기를 머금은 자연이 펼쳐진다. 개나리 덤불 뒤로 멀리 펼쳐진 산과 밭의 풍경은 따뜻하고, 연둣빛 풀들이 일렁이는 들판은 시원하다.
모네를 오마주한 ‘Line-Piece 1931’. 맥화랑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