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57. 동양미학의 초월적인 의지, 박대성 ‘행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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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의 영역은 재료와 기법이 현대 문명의 수혜를 입어 무수한 장르로 확대되고 있다. 이에 비해 전통 회화의 입지는 현대미술의 트렌드와 아트마켓 중심 추세에 밀려 입지가 약해지고 있다. 한국화의 한 맥인 ‘수묵화’의 경우 이름마저도 낯설어질 만큼 그 맥을 이어 가는 작가들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소산 박대성(小山 朴大成, 1945~)은 평생의 화업을 교육이 아닌 초인적인 노력의 수행방식으로 수묵의 세계를 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에게 동양미학의 정신은 지주로 존재한다. 단단한 사경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작업의 ‘화(畵)’와 더불어 독창적인 필법의 ‘서(書)’가 더해져 ‘동양미학의 실천’을 말해 준다. 감성의 지속적인 진화를 통해 생활 공간에 접근한 현대적 풍물까지도 수용하고 있다. 전통산수화에 매여 있지 않고 한국화의 소재를 넓혀가면서 수묵의 세계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탁월한 감각은 그의 중요한 덕목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박대성이 실경산수의 독보적인 존재로 인정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개하는 작품의 제목 ‘행자목’은 흔히 알고 있는 은행나무의 다른 명칭이다. 커다란 고택의 담을 배경으로 한 그루의 행자목이 있는 그림은 아주 단순한 소재로 묘사된, 그러나 오랜 시간의 이야깃거리를 수없이 담고 있는 듯한 그림이다. 수백 년이 되어 보이는 행자목의 둥치는 너무나 근엄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풍긴다. 반면 지지대에 의지하고 있는 나뭇가지는 많은 잔가지를 받들 기력조차 없이 지쳐 있는 느낌이다. 묵흔의 강약을 이용한 운필법을 통해 풍파를 이겨 낸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상대적으로 백묘와 담채만으로 묘사된 고택은 고목보다 드러나지 않는 묘사법으로 고목의 뒤에서 변함없이 오랜 세월을 같이하고 있는 동반자적 표현이다. 백묘로 묘사된 형태 위에 묵흔을 남김으로 운필의 맛은 물론이고 작품의 깊이를 만들어 내는 독특함을 보여준다. 또 다른 측면에서 이 작품은 226×456.6cm의 대작으로 박대성 작품의 성향에서 나타나는 스케일의 무한함을 보여 준다. 소재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변화하는 공간 감각과 지주로서의 동양미학이 융화되어 격의를 갖춘 수작을 화폭에 담고 있다.

정종효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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