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기준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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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시간을 지키면 칭찬받는데, 퇴근 시간을 지키면 되레 욕먹기 일쑤이다. 이런 부조리를 노래한 시가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위트 넘치는 작품이지만, 함유한 의미는 가볍지 않다. 직장인 비애를 다루는 동시에 음흉한 이중 기준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어서다. 갑질을 비판하는 분위기 덕분에 이런 억울한 일이 줄어들었지만,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우리는 이를 불공정이나 불공평하다고 부른다.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해야 할 규칙이나 평가가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유리하게 이뤄지므로.

비슷한 왜곡 현상을 우리 주위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게 요즘 자주 들리는 진영 논리이다. 여기선 사안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우리 편이냐 아니냐가 판단 기준이 된다. 지나친 국수주의로 불리는 이른바 ‘국뽕’도 다르지 않다. 사대주의나 선민사상도 뜯어보면 결국 하루바삐 미혹에서 벗어나야 할 동류 의식이다. 영국의 사회학자 기든스가 말한 ‘이중 기준’도 맥락을 같이한다.

‘기준’의 뜻은 가장 밑바탕이 되는(基) 본보기(準)로 풀이된다. 사회를 이끌어 가는 공동 가치와 구성원 간의 약속은 여러 용어로 표현된다. 이념, 도덕, 법규, 관습 등이 그러하다. 서로 대화를 나누는 언어나 상호 소통의 근본이 되는 개념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이를 통해 합의하고, 위반에 대해서는 억제와 처벌을 내리게 된다.

인간은 이처럼 척도를 통해 대상을 인식하고 행동한다. 아무리 강하고 독특한 개성의 소유자도 집단 문화라는 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래서 잣대가 흔들리면 공동체는 혼돈에 빠지게 되고 퇴행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정책 실행이 어렵고, 설사 진행되어도 불만이란 화살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코로나19 관련 긴급재난지원금도 마찬가지 처지에 놓여 있다. 소득 하위 70%에게 가구당 최대 100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는데 구체적인 기준이 제시되지 않아 혼란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힘들게 일하는 맞벌이 부부는 빠지고, 놀고먹는 타워팰리스 사람은 포함되는가”라는 비아냥마저 나오고 있다.

정부는 고액재산가를 배제한다는 방침이지만, 형평성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태세다. 짧은 시간에 모든 소득을 정밀하게 환산해서 반영할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기준을 먼저 제시하고, 범위를 유동적으로 두는 게 상식인데 왜 그리하지 않았을까. 넓은 지원 범위를 하루빨리 과시하려는 의도였을까. 의문이 이어진다. 목전의 총선 득표가 그 조급증의 원인이 아니길 바랄밖에.

이준영 논설위원 gap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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