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너머에 있는 詩의 본질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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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옥위 시인

시는 뭘까. 박옥위(79) 시조시인의 시조집 <그 눈물자리마다 한 무더기 꽃 놓으며>(책만드는집)와 류정희(73) 시인의 시선집 <당신은 지금도 오고 있다>(포엠포엠)를 읽으며 드는 생각이다.

시집 낸 부산 시단 두 중진 시인
박옥위 “말의 통점이 정신에 있다”
류정희 “먹을 갈면서 살을 간다”

성파시조문학상 이영도시조문학상 김상옥시조문학상 등을 수상한 박옥위 시조시인은 부산 시조 문단의 중진이다. 이번 12번째 시조집에서 눈에 띄는 것은 ‘심미적 완결성’(유성호 평론가)의 언어와 가족사의 아픈 기억이다.

‘바르고 큰 스물여덟 자 닿소리 홀소리 천지 만물을 호명하여 못 할 소리 없어라/세종은 새로운 질서를 이 땅에 세웠나니’(‘한글, 그 얼로 서다’ 일부). 율격을 넘어선 그의 언어는 부드럽다. 시조 틀 속에 삶의 한 풍경을 매듭 없이 넣어 ‘새로운 언어의 질서’를 넘본다. ‘아찔!’ 전문이다. ‘할아버지 힘들게 버스에 오르시자/재빨리 갖다 대는 할머니의 교통카드//“잔액이 부족합니다”//아찔하다/인생!’(종장 3음절이 ‘잔액이’다). 시조 ‘따뜻하게 읽기’는 사물에 대한 깊은 응시를 보여 준다. 그는 돌화살촉에서 ‘돌에도 얇은 날개를 벼’린 장인의 솜씨와 ‘짐승의 여린 꿈을 단번에 꿰뚫’은 섬뜩하고 ‘명징한 기록’을 감지하다가 이윽고 ‘꽃잎’을 읽어 내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하지만 시는 무엇인가. 언어를 넘어서야 하는 것이다.

과연 시인은 ‘말의 통점이 모두 정신에 있다’(79쪽)라고 썼다. 어머니의 한 맺힌 빨랫방망이질을 ‘울 엄니, 드럼 치시다’라는 시조로 녹였는데 열아홉에 ‘행불 전사한 아들 생각을 하얗게 빨아 널고 (...) 슬픔도 설움도 아픔까지 두드리다 보면 빨래는 하얘지고 머리카락도 하얘지는데’ 그것은 ‘눈물, 눈물, 눈물인가’라며 종장을 ‘톡 토닥’ 서러운 방망이 소리로 가득 채우고 있다. 시 공부하는 일흔셋 할머니가 ‘시인이 무엇꼬’ 하며 물었다고 한다. ‘시인, 시인’ 하다가 그걸 줄여서 ‘신(神)이요!’라고 했단다. 시인은 언어로써 언어를 넘어서서 ‘지친 발을 감싸는/세상의 밑바닥을 캐어 구름처럼 피우는’(85쪽) 그 정도쯤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시인은 “언젠가 시조에게 밥을 사 주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단다.
류정희 시인

부산여성문학상을 수상했던 류정희 시인은 부산 시단의 중진이다.

이번 시선집은 그간 낸 5권을 추려 묶은 것으로 눈에 띄는 일구(一句)는 ‘먹을 갈면서 살을 간다’(30쪽)는 것이다. 살과 삶을 갈아 쓰는 글, 그것이 시라는 것일 테다.

그의 시 밑뿌리에는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는 ‘나를 위하여 밤새며/눈물 뿌려 주던/한 분이셨다’(32쪽). 어머니의 그 눈물이 시를 쓸 수 있는 ‘살 같은 삶의 먹물’이 되는 것일 테다. 고향 거제, 그곳의 바다, 할아버지뻘인 시인 유치환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되는 그 한 분 어머니는 ‘먼지 같은 목숨을 위해 꺼지지 않던 불꽃/당신은 지금도 오고 있다’(20쪽)에서의 ‘신적인 당신’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 시인은 하늘의 ‘초승달’을 두고 ‘사립문 밖에 섰는/우리 어머니’(114쪽)라며 ‘지금도 오고 있는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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