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춘향 유문(遺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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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순 소설가

도련님 안녕하세요?

도련님이 한양으로 떠난 뒤 세상이 텅 빈 것처럼 허전해 갈피를 잡지 못했던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새봄이 왔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잊힐 거라 생각했지만 날이 갈수록 도련님과 오작교와 광한루를 거닐던 때가 떠오르더군요. 도련님 생각에 가슴에 덤불이 엉킨 듯 괴로울 때면 그네를 탔답니다. 허공 높이 차오르면 도련님이 계신 한양이 보일까 싶어 향단이에게 그네를 세게 밀어달라고 했지요. 그러나 보이는 건 허허로운 벌판뿐, 도련님은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더군요.

도련님 안녕하세요 춘향이예요
영원한 사랑 죽음으로 지킬게요

저도 무엇보다 태평성대 원해요
이제 총선 선거운동 벌어지잖아요

약속 뒤집는 정치인 너무 많아요
도련님만은 시퍼런 초심 지키세요

한때는 논밭 모퉁이에 쟁여있는 짚더미도, 창호에 어른대는 나뭇가지나 들판에 드리운 구름 그림자도 도련님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오매불망 도련님 생각에만 잠겼던 것도 잠시였습니다. 저는 새로 부임한 남원부사 변학도에게 끌려갔습니다. 제가 그렇게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께서는 제 처지를 도련님께 알리라며 방자를 한양에 보냈다고 했습니다. 방자가 도련님께 제 사정을 전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현재 변학도 수청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옥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곤장을 맞고 까무러치다 깨어나다 반복하다 보니 결국 죽음 직전까지 오게 됐습니다만 저는 변학도 험담으로 이 아까운 지면을 쓰고 싶지는 않습니다.

도련님. 도련님이 이 편지를 받으실 때쯤이면 아마 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다급한 제 사정을 전해들은 서정주 시인께서 제 심중을 헤아려 ‘춘향 유문(遺文)’이라는 시를 썼더랬지요. 제가 죽어 도솔천 하늘을 구름으로 날더라도 늘 도련님 곁에 있겠다는, 죽어서라도 도련님과의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다고, 서정주 시인은 구구절절 제 심정을 잘 표현하셨더라고요. 제 속을 뚫어보신 듯 말입니다. 그러나 제가 정작 도련님께 남기고 싶은 글은 그게 아니랍니다.

저는 사랑에 목을 매는 여자이기 전에 나라의 태평성대를 바라는 이 나라 백성 중 한 명입니다. 명석하신 도련님은 당연히 과거에 급제하셨을 겁니다. 아마 지금쯤 나랏일을 익히느라 정신없이 바쁘실 테지요. 요즘 나라 안팎으로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 때문에 일상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다고요?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총선까지 앞둔 터라 국정이 더 혼란스럽다고요? 게다가 벼슬아치들이 서로 자기편이 옳고, 상대는 그르다는 투의 패권 싸움만 일삼는 바람에 진창이 따로 없다면서요? 감방지기들이 주고받는 말만 들어도 나라 안팎 돌아가는 소식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답니다.

앞으로 총선 때까지 국회의원후보들의 선거운동으로 나라는 좀 시끄럽겠지요. 후보들은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라면 오장육부라도 내어줄 것처럼 떠벌리겠지요. 그것이 사탕발림이었다는 것은 그들이 국회로 입성하면 바로 드러나지요. 그들은 나랏일에 관심 없고 힘겨루기만 하지요. 나라가 구렁텅이에 빠질수록 싸움은 점점 흙탕으로 변한다지요. 그들도 처음에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불의에 편승하지 않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다짐했을 겁니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그 바닥에서 짬밥을 먹기만 하면 모두 초심을 잃고 권력에 빌붙는다는군요. 또 잿밥에 눈이 멀어 국정에는 관심 없습니다. 국민의 원성과 비난은 귓등으로 날려버리지요. 그들이 정쟁(政爭)에서 키운 건 철면피라는 맷집뿐이었으니까요.

도련님. 도련님만큼은 가슴에 철철 흐르고 있는 시퍼런 초심을 절대 잃지 마십시오. 윗선의 눈치를 보지 않고 법의 잣대로 시시비비를 가려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겠다는 서릿발 같은 초심을 끝까지 지니십시오. 그러나 제가 당부하지 않아도 도련님은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초심을 끝까지 잃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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